<표의뿌리가바뀌고있다>1.'黃金표밭' 절.교회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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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표(票)의 뿌리가 바뀌고 있다.학맥(學脈)에 얽매이지 않는 추첨세대 젊은이들,출마한 후보 이름을 아내에게 물어보는 바쁜 가장,「내고향」정서가 희박한 2세등….급변하는 사회환경은 전통적 표밭의 기반을 송두리째 옮겨놓고 있다.특히 세 대교체 바람과 정치신인.젊은 유권자의 대거 등장으로 요약되는 이번 15대총선은 과거선거를 보던 잣대로는 보이지 않을 뿌리깊은 표밭의 변화가 감지된다.중앙일보는 최근 표밭의 메카로 떠오른 종교를 시작으로 변화하는 표밭의 실상을 현장에 서 점검해 본다.
[편집자註] 소외와 갈등이 급증한 현대사회에서 안식과 구원을위해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그러다보니 지역의 사찰. 성당.교회등은 4.11총선에 입후보한 후보들이 가장 눈독들이는 황금(黃金)표밭의 구심점으로 등장하고 있 다. 서울강북지역에 출마예정인 국민회의 S위원장은 『가장 확실한 표를 몰아줄 수 있는 곳은 바로 신심(信心)이 매개가 된 종교』라고 단언한다.
현재 전문가들이 어림잡는 전국의 불교신도는 1천5백만명(사찰1만2천곳),개신교 1천2백만명(교회 4만8천곳),천주교 3백만명(성당 9백82곳)선.
때문에 자신의 신앙과 무관하게 벌어지는 후보들의 전(全)종교순례는 선거판의 첫손 꼽히는 현상이다.표의 「뿌리」가 바뀌고 있으니 어쩔수 없다.
지난달 24일 서울 도심지역의 한 사찰.교회장로를 맡고있는 여당 A위원장은 이 사찰 열성신도인 부녀간부를 대동하고 주지스님과 마주 앉았다.
『어차피 다른 후보중 불교신도도 없지 않습니까.인물 보고 우리 A위원장좀 밀어주세요.』 부녀간부의 호소에 주지스님은 『사람은 훌륭한데 그 당의 종교편향은 별로 맘에 안들고…』라며 A위원장의 입술을 허옇게 마르게 한다.
축원(祝願)부탁과 「약간의 성의」라는 보시(布施)를 마치고 떠난 A위원장은 네번째로 들른 사찰에 주지스님들이 모인 것을 보곤 쾌재(?)를 불렀다.
간곡한 부탁이 끝나자 『그간 A위원장을 잘 몰랐다.삼배(三拜)만 드리면 힘껏 도와주겠다』는 한 스님에게 그는 적잖은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그의 지역구엔 교회와 사찰이 각 1백30여개.『종교순례 포기는 바로 당선포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종교단체의 대형화와 실생활 파급으로 파생한 각종 민원의 해결도 후보들이 결코 외면키 힘든 부분.
강동지역의 야당 B위원장은 최근 지역의 유력교회에서 『주차난이 심한 일요일에 인근 초등학교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사용케 힘써달라』는 민원을 받았다.
때가 때인 만큼 B위원장은 이를 성사시켰지만 초등학교 학부형표의 불만도 우려,교회가 주차장 사용료조로 학교에 돈을 내도록뛰어다녀야 했다.
서울북부지역의 야당 C위원장도 최근 『6만명 신자를 갖고 있는 타지역 교회가 들어오지 않 도록 힘써달라』는 지역목사들의 연합민원에 부지런히 관청가를 뛰어다니고 있다.
종교를 활용,신심에 호소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자신이 속한 종교집회에 나가 『이번에 출마한다』는 성직자의 인사소개를 받는 것은 가장 흔한 경우.성전건립과 불사(佛事)헌금 내용등이 종교단체 주보(週報)에 실리는 점에 착안,기부를 아끼 지 않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근 간증집회등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역경과 극복」을 전하고 이 내용을 테이프로 제작,지역구에 우송.배포하는 아이디어도등장해 선관위는 그 「사전선거운동 여부」에 혼란을 겪고 있다.
중앙당은 물론 최근엔 일선지구당도 신자 간부가 종교별 대책위원장을 맡아 후보와 해당종교간 통로역할을 전담중이다.일부 사이비종교인은 「후보를 위한 집회」를 내세워 비용을 요구하는 후유증마저 선관위에 포착된 실정.거대한 「표의 뿌리」 로 변모한 종교앞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화두(話頭)가 다시금 대두될 양상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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