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삼성, 세계 초일류기업 계기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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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중앙지법이 어제 삼성 사건의 공소사실 가운데 양도세 포탈 등 일부만 유죄로 인정해 이건희 전 회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을 불러일으킨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했다. 조준웅 특별검사가 지난 4월 삼성 관계자 8명을 불구속 기소한 지 3개월 만에 일차적인 사법적 판단이 마무리됐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무엇보다 경영권 승계 논란의 핵심이었던 에버랜드 CB 발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검팀은 이사회 결의 및 주주통지 절차 등에 흠이 있다는 점을 들어 주주 배정이 아닌 제3자 배정 방식이라며 이 전 회장 등을 배임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절차상의 흠결보다는 실질적인 인수권을 주었는지 여부로 유·무죄를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존 주주들이 인수권을 부여받고도 실권한 이상(설령 그것이 당시 비서실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 해도) 에버랜드의 지배구조 변경이나 기존 주주의 주식가치 하락이란 결과는 스스로 용인한 것이어서 그 주주의 손해를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죄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로 특검팀은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공소사실 가운데 주요 수사 결과로 내세워온 부분들이 모두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수사를 맡았던 특검팀으로서는 혹시라도 수사 과정에서 무리가 없었는지 차분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삼성은 특검 수사 결과 발표 후 이건희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 고강도 대책을 내놓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지난 1일부터는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들을 모두 털어내야 한다. 그것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는 길이요, 국민에게 한 다짐을 실천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