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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리뷰] 한 폭의 수묵담채화 연상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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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에게 뉴욕 카네기홀 데뷔는 단순한 '신고식'이 아니라 '입성(入城)'에 가깝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로 진입을 알리는 팡파르다.

중국 태생의 피아니스트 랑랑(郎朗.22)이 DG 레이블로 옮긴 뒤 첫 독주 음반을 냈다. 지난해 11월 7일 뉴욕 카네기홀 데뷔 독주회 실황이다. 알프레드 브렌델.크리스티안 짐머만 등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들을 초청한 카네기홀 기획공연'건반의 비르투오조'시리즈다.

랑랑은 라이브 녹음을 즐겨하는 편이다. 그만큼 자신감과 패기로 무장해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랑랑은 이번 앨범에서 주무기인 현란한 기교와 타건력(打鍵力)을 자랑하기 보다는 충실한 기본기를 요하는 레퍼토리로 꾸몄다. 특히 하이든의'C장조'가 그렇다. 손끝의 테크닉으로 선율의 흐름만 추적하는 낭만주의 작품과는 달리 하이든의 곡들은 여러 선율의 대립 구도와 화음 등 신경써야 할 대목이 많다. 슈만의'아베크 변주곡'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동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19세 때 카네기홀 데뷔 무대에서 연주했던 곡이다.

극명한 대조로 점철된 슈베르트의'방랑자 환상곡'에선 살아 움직이면서 어디론가 돌진하는 무수한 음표들이 과감하게 구사하는 붓놀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순간순간의 울림도 소홀하지 않은 섬세함은 중국 작곡가 탄둔(潭盾.47)의'수채화로 그린 8개의 추억'에서 더욱 빛난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노래 가락을 인상주의적 터치로 그려낸 수묵담채(水墨淡彩)다.

랑랑은 오는 5월 6일 예술의전당에서 '방랑자 환상곡', 하이든의'C장조 소나타', 발라키레프의'동양적 환상곡 이슬라메이'로 독주회를 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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