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쉥이 떼죽음 … 어민들 속 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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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포항 구룡포읍 구평리 바닷가에서 25년째 우렁쉥이 양식을 하는 하상규(53)씨. 그는 요즘 배에서 우렁쉥이를 건져 올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6㏊에 설치한 양식시설 50대에 달라붙어 있던 우렁쉥이의 80~90%가 죽었기 때문이다. 우렁쉥이 양식시설 1대는 보통 길이가 100m(간승줄)다. 이 간승줄에 2m 간격으로 5~7m 길이의 밧줄을 바다 밑으로 늘어뜨려 우렁쉥이를 매달아 기른다.

작황이 좋을 때 연간 5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 하씨는 올해 우렁쉥이 종묘대금 5000만원 등 비용조차 건지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가 폐사 원인을 규명하거나 대책을 마련해 발표한 적도 없다”며 답답해 했다.

경북 동해안 우렁쉥이 양식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달이 본격 수확철이지만 우렁쉥이가 대량 폐사한 때문이다.

◇잦은 폐사=포항시와 어민들에 따르면 올해 포항지역 양식장 70개소(218㏊)의 우렁쉥이 80~90%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기준 피해액만 6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99개소 270㏊의 양식장이 있는 영덕도 양식장별로 차이가 있지만 70% 가량 폐사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역시 피해액이 수십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울진(50개소 210㏊)과 경주(4개소 10㏊)는 포항·영덕보다 나은 편이지만 집단 폐사 현상이 나타나기는 마찬가지다. 20~30% 폐사는 기본이라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2006년 대량 폐사가 있었다. 태풍 우쿵이 지나간 뒤 갑자기 수온이 오르면서 우렁쉥이 90% 이상이 죽은 것이다. 어민들은 이때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자연재해로 인정받아 복구비를 지원받았다.

문제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원인은 규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등은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잇따라 덮쳐 갑작스럽게 수온이 변했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우렁쉥이를 죽게 했다고 추정하는 정도다.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이상 조류 등으로 90% 이상 폐사해야 종묘대 등 복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점도 어민들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양식면허 구조조정 요구=장기면 영암리 바다에서 양식장(2㏊)을 운영하는 박동영(52)씨는 “현 우렁쉥이가 동해안에 맞지 않다면 대체품종을 개발하거나 선박처럼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양식장 면허 수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민들이 거액의 정책자금 등을 쓰는 탓에 면허를 버릴 수도 없어 피해와 적자가 늘고 있다”며 “피해 복구비 지원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5.5㏊에 양식장을 운영하는 영덕군 어업인 후계자 이효진(43)씨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7~8년 전부터 폐사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보조하는 보험제도 도입, 면허권 회수 등을 통한 구조조정, 심해 어장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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