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어머니 주제 "선천댁"펴낸 안병무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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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80년대 한국사회의 화두(話頭)가운데 「민중」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폭압적 정권 아래 사회운동권의 모토는 민중으로 수렴됐다. 하지만 90년대 달라진 정치환경과 국제경쟁 속에서 민중은한때의 유행처럼 희미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민중을 논하면 자칫 시대착오자로 오인받는 국제.정보화 시대에아직도 민중의 유효성을 굳게 믿는 노(老)신학자 안병무(安炳茂.74)박사.
그가 고희를 한참 지난 나이에 신학자라는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을듯한 책 『선천댁』(범우사刊)을 냈다.
「늘 살아 있는 나의 어머니」라는 부제가 가리키듯 선천댁은 安박사의 생모다.
성미급한 독자들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는 安박사의 애틋한 마음을 그린 책으로 짐작하겠지만 이 책이 뜻하는 바는 그게 아니다. 어머니의 생애를 재구성했지만 한 개인의 역정을 그린 전기물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실존 인물을 통해 민중의 실체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담아냈다.
따라서 이 책은 60년대 중반이후 30년동안 민중신학을 올곧게 지켜왔던 安박사의 민중관을 특별한 형식으로 대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민중신학을 연구해왔지만 민중을 정의한 적은 한번도없어요.과학적 정의에 매달리다 보면 언어만 남고 핵심은 사라지기 때문이죠.어머니의 생애를 되짚다보니 여태껏 숙제로 부담스러웠던 민중의 참뜻을 절절이 깨닫게 됐어요.』 선천은 평안남도의한 지방.옛 어머니들이 그랬듯 安박사의 어머니 또한 출신지역에따라 그저 선천댁으로 불렸다.
그가 安씨 집안 막내 며느리로 시집올 때 나이는 16세.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던 그는 소위 「먹물」이었던 남편의 평생에 걸친 냉대를 애써 모른체 하며 임종까지 자기길을 흔들리지 않고 걷는다.
애첩과 함께 중국으로 내빼려는 남편을 따라 무작정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비밀지원하고 일본경찰 눈앞에서 청년 셋을 살려내는가 하면 해방직후 실의에 빠진 아들을 독일로 유학보내 오늘의安박사를 있게 하는 등 말 그대로 어떤 상황.위 치에서도 후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
해방전 간도에서 마적이 급습했을 때 장정 서너명이라야 옮길 수 있는 가마솥을 번쩍 들어 아이들을 숨긴 일화는 어머니의 사랑에 담긴 초능력 바로 그것이었다.
또 독신주의였던 아들을 설득,47세에 늦장가를 들게 하고 아들이 이듬해 아이를 보자 「만세」라는 한 단어를 남기고 세상을떠나는 모습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어머니는 가장 평범한 분이었습니다.그 시대를 산 여자들의 삶을 대표한다고나 할까요.평범하나마 그의 일상에 묻힌 비범함은바로 역사의 담지자인 민중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安박사는 평소「상자」(常者)라는 한자를 즐겨쓴다고 했다.
우리말로 풀으면 「상놈」이다.여기서 상은 변함없음.영원함을 뜻한다. 지위.권세.재산 등의 그늘에 가린 상놈들이 역사의 주춧돌을 쌓아왔고 또 이는 사회 변화와 관계없이 역사를 관통하는진리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한국신학대에서 하던 강의를 쉬고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릴 아시아 공동학술대회 준비에 바쁘다는 安박사는 고령에도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중은 당신 바로 곁에 숨쉬고 있다.』이 세상에 무한히도 많은 선천댁을 제대로 응시하라는 가볍고도 무거운 주문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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