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때부터 100년 종자 개량한 일본 ‘와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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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자랑하는 와규(和牛ㆍ사진)도 한우처럼 종자개량의 산물이다. 차이라면, 한우의 종자개량 역사가 25년에 불과한 반면 와규는 1세기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우는 한 마리에 평균 650만원 가량에 팔리지만, 와규는 900만원 정도다. 와규 품평회에서는 4억원에 이르는 소도 나왔다. 세월의 차이가 곧 품질의 차이인 셈이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와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기소가 아닌 일소였다. 덩치가 작았고 잘 자라지도 않았다. 품종으로는 흑모(黑毛)ㆍ갈모(褐毛) 등이 있지만 흔히 와규라고 할 때는 전체 소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흑모화우를 말한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인 19세기 말 일본 정부는 일소로만 쓰던 와규를 개량해 고기소로 만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ㆍ유럽 등지의 덩치 큰 소를 수입해 전통 소와 섞는 잡종 개량 방식이었다. 하지만 잡종 장려 정책은 단 8년 만에 끝났다. 외국 소와 피를 섞은 와규는 체격이 크고 우유량도 많아졌지만, 육질이 크게 나빠졌다. 이후 순수 와규와 혼혈종의 장점은 발전시키고, 단점은 보완하는 방법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우리나라 도(道)와 같은 현(縣) 별로 실정에 맞게 개량목표를 세우고(1917년), 혈통 관리를 위해 태어난 소에 대한 등록제(1920년)도 시작했다. 1977년에는 “와규가 일본의 사육환경에 맞는 독특한 고기소 종류로 완성됐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쇠고기 수입개방이 시작된 1991년에는 최상급 육질인 프라임(prime) 등급의 소가 전체의 70%를 넘어섰다. 당시 미국 소 중 프라임 등급은 전체의 3%에 불과했다.

한국종축개량협회 정용호 한우개량부장은 "화우의 혈통 등록률은 100%에 가깝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60%도 되지 않는다”며 “한·일간 소 품종 개량 기술의 격차는 20년 이상"이라고 말했다.

일본 소 품종개량사업의 장애물은 역시 근친교배다. 현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종자개량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현 안에서 우수한 유전능력을 가진 와규를 뽑아 정액을 추출한 뒤 농가로 내려 보내고, 여기서 자란 수소를 다시 선발해 씨를 받는 방법이다. 이 때문에 국가 단위에서 종자를 개량하는 우리나라보다 근친교배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현 단위의 종자개량은 장점도 있다. 지역별 와규 브랜드의 특성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와규 중에서는 고베(神戶)와 마쓰사카(松板)산이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는다. 한우는 횡성 한우ㆍ당진 토바우처럼 지역 브랜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씨수소가 한 곳에서 개량ㆍ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유전 형질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축사 환경과 물, 사료 등에서 지역별 품질 격차를 낼 수 있을 뿐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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