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진작가 가토씨 북한 잠입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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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리랜서 사진작가겸 군사문제 전문가인 일본인 가토 겐지로(加藤健二郎.35)는 지난해말 한 중국인의 도움으로 이틀에 걸쳐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 잠입,사진을 찍는데 성공했다.
가토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 친구에게 30만엔(약 2백30만원)을 주고 몰래 북한땅에 다녀왔다』며 『북한은 가난하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건강이나 의복상태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경지역의 경비가 의외로 허술해 주민들이 탈출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같았지만 굳이 도망가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같았다』고 말했다.
가토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를 졸업한 뒤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해외 분쟁지역들에 흥미를 느껴 사표를 내고 89년부터 보스니아.체첸.이라크.니카라과등을 다니며 취재활동을 해왔다.이번 북한잠입에 대해 그는 『북한당국에 붙잡혀 쥐도 새 도 모르게 처형될까봐 두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본인이니까 십중팔구는 무사할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가토의 잠입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중국인 친구 Y가 『30만엔을 주면 북한의 농촌지역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제의해왔다.전직 중국공산당 간부였던 Y는 북한쪽에 뇌물을 쥐어주면 잠입은 물론 사진촬영도가능하다』고 했다.한동안 망설이다 응하기로 작정 하고 지난해 12월14일 베이징(北京)을 거쳐 옌지(延吉)로 갔다.1주일가량 대기하다가 Y와 그의 부하,일본어 통역등 4명이 함께 12월22일 오전6시30분 북한을 향해 출발했다.
자동차로 두만강변을 다니며 강폭이 좁은 곳을 찾다가 싼허(三合)남쪽에서 폭이 30밖에 안되는 곳을 찾았다.얼음이 단단해 쉽게 강을 건넜다.명색이 국경인데도 경비병.철조망.감시탑같은 것이 전혀 없어 놀랐다.
북한주민들이 중국으로 탈출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같았다.일부 주민들은 실제로 탈출했다지만 대량탈출 조짐은 없어 보였다. 국경 건너편은 북한 함경북도의 탄광촌인 유선(遊仙)마을이었다.인구 1천명 정도의 마을이었다.되도록 북한인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카메라(4백~8백㎜ 망원렌즈 사용)로 촬영을 시작했다.
북한의 농촌마을은 가난하지만 평온해 보였다.개울에서는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고 있었고 동네어귀에서 한떼의 어린이들이 추위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놀이를 하고 있었다.
길가는 어른들은 점퍼등을 두툼하게 입고 있었고 건강상태도 좋아 보였다.최근 언론들의 식량난 관련 보도때문에 북한이 아프리카의 기근지역에 못지 않은 참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행한 안내인은 『먹을 것,특히 쌀이 부족해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기.의복 등 식량이외의 것에는 아직 큰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큰 마을인데도 자동차라고는 트럭 한대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주된 교통수단은 소달구지인 듯했다.TV 안테나는 주택 수십채에 한 곳 꼴로밖에 달려 있지 않았다.주민들은 밖에 나갈 때 반드시 서너명 이상이 무리지어 다니는 습관이 있는 듯했다.
다음날인 23일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이번에는 무산(戊山)의북쪽에서 두만강을 건넜다.무산북쪽 20㎞가량 되는 지점의 목재적화장에서 목격한 2대의 크레인은 본체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흥미로웠다.
이날은 북한의 전기사정이 궁금해 일부러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다.오후6시쯤 사방이 어두워지자 산간지역의 주택 곳곳에 전깃불이 켜졌다.큰 길가에는 가로등까지 켜졌다.분명히 북한의 물자난은 생각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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