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안·표정훈 지음, 효형출판, 288쪽, 1만4000원
아이들을 위한 철학교실을 여는 교수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철학 공부는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철학이라면 설레설레 고개부터 젓거나 ‘개똥 철학’류를 지레짐작해 슬금슬금 농담이나 떠올리는 수준에선 엉뚱한 이야기였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처럼 정답이 없으니까요. 자기 생각을 맘대로 질문하고 말할 수 있어서 좋대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라도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심할 텐데.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또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은행의 부장급 직원들에게 철학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하는 말. “대학 다닐 때는 철학이 그렇게 어렵더니만, 지금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고. 강 교수가 그들에게 해 준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강의를 잘 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다.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노년의 학문에 가깝다.” 철학에 대한 이해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는 주장이다.
나이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유년과 노년의 학문. 편견이 없거나 편견을 다스릴 수 있는 나이에 철학의 담론은 스스로의 삶에 젖어들 수 있는 모양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서강대 철학과의 스승 강영안 교수를 만났다. 표씨는 대학 시절의 강의노트를 아직도 20권이나 간직하고 있는 진지한 철학도였다. 강 교수는 직접 원전을 읽지 않으면 그에 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지 않는 철저한 학자다. 때문에 10개 언어로 책을 읽는다. 1970년대 현역병 시절 네덜란드 철학자 반 퍼슨 교수와 네덜란드어로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였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는 희랍 시대부터 포스트모던까지 주요 철학자와 저작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어지지만 이 만만찮은 철학사의 ‘대장정’을 산보하듯 쉽게 엮었다.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공부는 왜 합니까.” 제자의 질문에 스승은 이미 답변을 내놓았다. “유용성의 관점에서 볼 때 쓸모 없는 것일지라도, 쓸모 없는 지적 노력과 훈련 없이는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할 수 없다.”(강영안, 『인간의 얼굴을 한 지식』)
불현듯 칸트나 스피노자·레비나스 등의 저작을 제대로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지적 용기를 주는 책이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