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산보하듯 쉽게 엮어낸 철학의 정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강영안·표정훈 지음, 효형출판, 288쪽, 1만4000원

아이들을 위한 철학교실을 여는 교수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철학 공부는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철학이라면 설레설레 고개부터 젓거나 ‘개똥 철학’류를 지레짐작해 슬금슬금 농담이나 떠올리는 수준에선 엉뚱한 이야기였다. “학원에서 배우는 것처럼 정답이 없으니까요. 자기 생각을 맘대로 질문하고 말할 수 있어서 좋대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라도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심할 텐데.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또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은행의 부장급 직원들에게 철학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하는 말. “대학 다닐 때는 철학이 그렇게 어렵더니만, 지금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고. 강 교수가 그들에게 해 준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강의를 잘 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다.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 노년의 학문에 가깝다.” 철학에 대한 이해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는 주장이다.

나이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유년과 노년의 학문. 편견이 없거나 편견을 다스릴 수 있는 나이에 철학의 담론은 스스로의 삶에 젖어들 수 있는 모양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서강대 철학과의 스승 강영안 교수를 만났다. 표씨는 대학 시절의 강의노트를 아직도 20권이나 간직하고 있는 진지한 철학도였다. 강 교수는 직접 원전을 읽지 않으면 그에 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지 않는 철저한 학자다. 때문에 10개 언어로 책을 읽는다. 1970년대 현역병 시절 네덜란드 철학자 반 퍼슨 교수와 네덜란드어로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였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는 희랍 시대부터 포스트모던까지 주요 철학자와 저작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어지지만 이 만만찮은 철학사의 ‘대장정’을 산보하듯 쉽게 엮었다.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공부는 왜 합니까.” 제자의 질문에 스승은 이미 답변을 내놓았다. “유용성의 관점에서 볼 때 쓸모 없는 것일지라도, 쓸모 없는 지적 노력과 훈련 없이는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할 수 없다.”(강영안, 『인간의 얼굴을 한 지식』)

불현듯 칸트나 스피노자·레비나스 등의 저작을 제대로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지적 용기를 주는 책이다.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