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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특집] 팔도소주 … 전남 · 전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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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해양조 ‘잎새주’

1950년부터 광주·전남에 터전을 잡은 보해양조는 89년 국내 소주시장을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을 터뜨렸다. 이른바 ‘무사카린 소주’를 개발·출시하면서 당시 대부분의 소주에 사용되던 사카린이 자취를 감추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어 96년에는 프리미엄급 ‘김삿갓’을 통해 본격적인 품질경쟁 시대를 열었다. 2002년부터 생산하는 ‘잎새주’는 단풍나무 수액과 숙취 해소에 효과가 있는 아스파라긴산을 첨가물로 사용하고, 화학조미료(MSG)는 사용하지 않아 뒷맛이 깔끔하다. 메이플시럽으로 알려진 단풍나무 수액은 노폐물 제거와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플시럽을 소주에 첨가한 것은 잎새주가 처음이다. ‘좋은 물이 좋은 소주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전라남도 지역을 샅샅이 뒤져 91년 노령산맥 끝자락인 장성에 생산 공장을 마련했다.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남도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보해양조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8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산낙지, 생생한 감동

여름철 잃기 쉬운 입맛을 돋우는 데 뭐가 좋을까.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낙지를 떠올려 보자. 산낙지·기절낙지·낙지볶음·낙지물회 등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감돈다. 지금은 산란기인 탓에 가을이나 겨울에 비해 맛이 덜하지만 그래도 원기 회복에 으뜸으로 꼽기에 손색없다.

낙지 맛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산낙지다. 소주 한잔 들이켠 후 꿈틀대는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칭칭 감아 초장을 찍은 후 입에 넣으면 착착 감기면서 오물오물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남도에서는 특히 세발낙지가 유명하다. 다리가 가늘다 해서 불리는 세발낙지의 주산지는 목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무안·신안이나 순천산이 대부분이다. 드넓은 갯벌과 오염되지 않은 청정 해역이 낙지에 최고의 서식환경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여름에는 씨알이 굵어 한 마리를 통째 씹어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대신 잘게 썰어 먹는 산낙지 요리가 제격이다. 또한 가을이나 겨울에 비해 잡히는 양이 적어 가격이 비싼 편이다. 한 마리에 최소한 6000원 이상 줘야 한다.

무안에 가면 기절낙지가 유명하다. 말 그대로 기절시켜 먹는 낙지다. 그런데 접시에 담겨 상 위에 올라오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머리 따로, 다리 따로다. 이유는 이렇다. 따로 잘라낸 머리는 삶은 후 숯불에 살짝 구워낸다. 다리는 빨판에 묻은 개흙을 씻어내기 위해 플라스틱 바가지에 문지르는데, 이렇게 하면 마비현상이 와 마치 기절한 것처럼 보인다. 이때 빨판이 떨어져 나가거나 다리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술이다. 젓가락으로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은 채 축 늘어진 낙지는 그러나 배·무안양파·식초 등 10여 가지의 재료로 만든 소스에 몸을 담그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밖에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낙지무침이나 낙지물회도 소주 안주에 잘 어울린다.

생고기도 소주 파트너로 빼놓을 수 없는 남도 음식이다. 전라남도 어디를 가든 쇠고기를 재료로 하는 식당이라면 메뉴판에 생고기가 반드시 등장한다. 생고기는 말 그대로 날고기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육회와는 다르다. 두툼하게 포를 떠 큰 접시나 나무접시에 올려 내놓는 모습은 참치의 뽈살을 담아낸 것처럼 붉다. 고추장·깨·마늘·참기름 등으로 버무린 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면 씹지 않아도 될 만큼 부드럽다. 살짝 마블링이 돼 있지만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소의 엉덩이나 뒷다리 등 지방이 많지 않은 부위를 쓰기 때문이다. 생고기는 또 도축한 지 하루 이상 지나면 제맛을 잃는 까닭에 신선도 유지가 중요다. 무안·함평·장흥 등의 한우 생고기가 유명한 것은 신선도 덕분이다.

글·사진 <무안·함평>=박상언 기자

<전북>하이트주조 ‘하이트소주’

전라북도에 오면 ‘하이트’가 소주다. 발음을 잘해야 한다. ‘화이트’라고 하면 경남의 소주와 헷갈리고, 그냥 ‘하이트’라고 하면 맥주와 헷갈리니 정확한 발음으로 ‘하이트소주’라고 말해야 한다.‘하이트소주’엔 이유가 있다. 하이트맥주㈜가 지분을 인수해 ㈜보배에서 ㈜하이트주조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하이트소주’는 엄연히 전북을 대표하는 자도주(自道酒)다. 2007년 새롭게 출시된 알코올 도수 19.5도의 하이트소주는 요즘 저도주 트렌드에 맞춘 제품으로 목 넘김이 아주 우수하다. 하이트주조 측에 따르면 2000년에 출시한 21도 하이트소주가 ‘티 없이 맑은 소주’라는 타이틀에 맞게 깨끗한 첫 맛과 끝 맛을 선사했다면, 19.5도의 하이트소주는 맥반석을 통해 고유한 맛을 살리고, 또다시 참숯으로 여과해 만들어낸 웰빙소주란다. ‘웰빙소주’란 말이 어색하긴 해도 ‘적당히 마시면 웰빙, 과하면 노(No)웰빙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모가리, 오묘한 맛

‘맛의 대명사’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전주에서 소주와 궁합이 맞는 음식을 찾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괴롭다고 발만 동동 구를 수는 없다. 첫 행선지로 소주를 부르는 요리 ‘오모가리탕’를 찾았다. ‘묵은지 김치찌개’로 더 많이 알려진 오모가리는 실은 뚝배기의 전라도 사투리다. 이 뚝배기에 시래기를 깔고 쏘가리·메기·동자개(빠가사리)·피라미 등의 민물고기를 넣고 바글바글 끓여낸 민물매운탕이 오모가리탕이다. 흔히들 ‘오모가리’라고도 부르는데 끓여낸 그릇이 요리 이름의 고유명사가 된 셈이다.

도시 하천이라고 하기엔 너무 맑은 전주천변. 오모가리로 대를 이어 장사하는 가게 서너 집이 몰려 있다. 그중에서 대표 맛집은 60년 전통의 화순집. 김종희(60) 사장이 어머니의 손맛을 수십 년째 잇고 있다. 예전에는 전주천에서 천렵한 민물고기를 주로 썼지만 요즘은 진안 용담댐에서 가져온 것을 쓴다고 한다. 특히 최근 전주천에 수달이 등장해 물고기가 많이 줄어든 것도 이유다. 김 사장이 들려주는 오모가리탕을 맛있게 끓이는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오모가리에 말렸다 불린 시래기를 깔고 그 위에 내장을 제거한 민물고기를 얹은 다음 들깨물과 육수를 붓는다. 이때 육수는 간수를 뺀 소금물만을 사용하는데, 민물고기 본래의 맛을 유지하기 위함이란다. 여기에 민물새우와 통들깨, 다진 마늘, 파 등을 썰어 넣고 20~30분간 보글보글 끓여내면 얼큰한 탕이 완성된다. 설 끓이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끓여내는 것이 중요하다. 끓고 있는 국물을 한술 들이켜면 시래기와 된장, 고추장 양념이 뒤섞여 구수하면서도 얼큰한 맛이 맑은 술 ‘소주’를 부른다. 얼큰한 맛에 “캬아~” 소릴 내보고, 소주의 짜릿한 맛에 “캬아~” 소리를 또 한번 지른다. 그러면서도 술로 꼬인 속을 확 풀어줄 만큼 시원하다.

‘장어 맛을 제대로 알려면 고창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듯이 고창에 가면 그야말로 한 집 건너 장어집이 있다. 특히 선운산 입구에는 풍천장어집이 즐비하다. 어느 집이 원조인지, 어떤 집 장어가 더 맛있는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어떤 집에 들어가도 똑같은 맛, 똑같은 상차림이다. 고창의 명물인 복분자주와 함께 장어를 맛봐야 하겠지만 소주 역시 장어와 궁합이 잘 맞는다. 고단백질 성분의 장어가 자칫 느끼함을 줄 수 있는데 칼칼한 소주로 이를 개운하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풍천장어는 원래 지명을 딴 음식이 아니다. 풍천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이 중에서 기수역, 즉 바다와 만나는 강줄기라는 설과 역류하는 하천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선운산에서 발원해 선운사 앞을 지나 북쪽으로 흘러가는 강은 이런 점에서 ‘풍천’이 맞다. 원래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자연산 장어를 잡아 구이를 했겠지만 지금은 자연산 장어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장어구이 집에서 쓰고 있는 장어는 양식이거나 수입산이 대부분이다.

글·사진 <전주·고창>=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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