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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한참 늦은 한나라 ‘쇠고기 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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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벌~써 다뤘어야 하는데….”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9일 한 말이다. 국회도서관에서 당 중앙위원회 주최로 열린 ‘미국산 쇠고기, 과연 인간광우병에 위험한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해서다.

그의 말대로 제대로 된 여당이라면 진작 미국산 쇠고기와 인간광우병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는 토론회 정도는 열었어야 했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만든 공포가 실재했다면 그 실체를 밝히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러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청와대와 국민이 직접 충돌한 두 달간 집권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배회하는 공포를 ‘광우병 괴담’이라고 몰아세웠을 뿐 그 공포에 맞서려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여의도에서는 “방송사들이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해 줄 한나라당 측 토론자를 구하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여당이 눈치만 보고 있는 사이 국민은 스스로 광우병 전문가가 됐다. 세 명만 모여 앉아도 ‘vCJD(인간광우병)’니 ‘SRM(특정위험물질)’이니 하는 전문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은 미국산 쇠고기와 인간광우병의 상관관계에 대해 저마다 결론을 내렸다. 누가 뭐래도 좀처럼 바뀌지 않을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이제 와 토론회를 열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한지 한번 따져보자”고 나섰으니 촛불집회의 베테랑이 된 ‘중딩(중학생)’들이 웃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때늦은 토론회란 것도 ‘골수당원’인 중앙위원들 100여 명을 모아 놓고 벌인 집안 잔치였다. 박희태 대표 등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10여 명은 잠깐 얼굴 도장만 찍고는 모두 자리를 떴다. 여당의 ‘지원 사격’을 애타게 기다리다 홀로 만신창이가 된 청와대가 씁쓸한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나라당은 같은 날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토론회’도 열었다. 역시 미국산 쇠고기 광풍이 인터넷 공간을 훑고 지나간 다음에 열린 ‘뒷북 토론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여당인 셈이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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