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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대북제재 해제, 안보리 발의로 검토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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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삿포로(札幌)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도야코(洞爺湖)에서 150㎞ 떨어져 있다. 도야코의 윈저호텔에는 G8 정상들만 투숙하고 그 밖에 초청받은 한국·중국 등의 국가 원수들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삿포로의 호텔에 분산 투숙했다. 로이튼호텔에 임시 유엔본부를 차린 반 총장은 시간을 분(分)으로 쪼개 도야코를 왕복하고 국가 원수들을 만나고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반 총장에 대한 호텔 측의 대우와 일본 경찰 당국의 경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극상’이었다. 빠듯한 스케줄을 뚫고 들어가 그를 만나 기후변화와 식량난 해결 같은 그의 역점 사업과 지난주 유엔 사무총장 취임 후로는 처음 방문한 한국에 대한 인상을 들었다.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左)이 8일 오후 숙소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 시내의 로이튼호텔에서 본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삿포로=김현기 특파원]

만난 사람 =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서울에서의 기자간담회와 국회 연설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 영 기여를 못 해 창피하다’는 말로 의도적으로 화를 내신 것 같습니다. 충격요법이 효과가 날 것 같습니까.

“그건 한국 정부에 달렸죠. 제 표현이 좀 솔직했는지 모르나 평소에 느낀 대로 말한 겁니다.”

-한국의 후진국들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는 국내총생산(GDP)의 0.07%인데 2015년까지는 0.25%까지 올릴 계획입니다. 그 정도로 안 됩니까.

“유엔이 권장하는 게 GDP의 0.7%입니다. 유럽 국가들 중에는 이 목표에 거의 도달한 나라가 많아요. 한국이 7년 후인 2015년에 가서 0.25% 한다는 것은 아직 훨씬 못 미친다는 이야기죠. 한국 정부가 좀 더 의욕적으로 목표를 잡아야 해요.”

-국제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혜택받은 자의 도덕적 의무) 같은 겁니까.

“그렇죠. 나눔이라는 건 내가 여유 있을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을 나누는 것이 중요해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도 한국은 국력에 비해 저조하다고 보십니까.

“매우 저조합니다. 한국은 유엔군의 도움으로 자유와 평화를 지킨 나라 아닙니까. 우리 스스로 열심히 일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한 측면도 있잖습니까. 그때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유엔평화유지군이 20개 국가에 12만 명이 있습니다. 한국은 그 12만 명 중 400명만이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반 총장께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때나 외교부 장·차관 시절에는 왜 그런 일을 적극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아휴, 저도 물론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직에 있을 때 누구보다 이 문제에 대해 제일 많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언론·국회·청와대·국방부에 다 이야기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그들은 정치적 의지가 약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습니다. 예산 당국, 국방부로 가면 이건 국내 위주, 국민의 안전 위주에 신경 쓰게 돼 이야기가 진전이 안 됐습니다.”

-총장께서는 노무현 정부의 민족자주외교를 지휘했습니다. 민족자주외교에 대한 안티테제(반작용)로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외교가 등장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족자주외교는 옳은 방향이었습니까.

“노 전 대통령 정부의 외교는 자주외교뿐 아니라 균형적 실용외교였어요. 그때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과거 정부에 비해 상당히 새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있을 겁니다. 저는 외교부 장관을 하면서 자주와 실용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퍼셉션(perception·인식)이나 충격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정책 이상으로 크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되짚어 보면 한·미 관계에서도 노 전 대통령 때 과거 수십 년 동안 못 한 것을 거의 다 했습니다. 퍼셉션이라는 건 무거워요. 20년 전, 30년 전에 일본이 ‘이코노믹 애니멀(economic animal:경제적 동물)’이란 말을 듣고 ‘일본 때리기’의 대상이 됐던 걸 생각해 보세요. 부정적인 인상 한번 박히면 오래갑니다.”

-북핵 문제가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로 결정적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절차를 밟고 있고, 일본도 부분적으로 대북 제재를 해제했습니다. 유엔도 ‘안보리 결의 1718’을 해제하거나 완화할 전망은 어떻습니까. 누가 그걸 주도할까요. 중국은 연말께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상황 진전을 봐야 합니다. 마침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돼 가고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도 최근 영변의 원자로 냉각탑 폭파 모습을 보면서 ‘북한이 정말 할 뜻이 있나 보다’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더 굳어지는 상황의 진전을 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안보리가 새로운 결의를 안보리 회원국들의 발의로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안보리 결의 1718’에는 북한의 핵 폐기란 원인 해소가 있어야 해제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는데, 북한의 핵 포기는 앞으로 5년, 10년 또는 그 이상 걸릴지 모릅니다.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유엔의 제재 완화를 병행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이 다음 주 중 열릴 가능성이 있고, 그게 진전돼 장관급 회담이 되면 논의를 해 봐야겠습니다.”

-꽉 막힌 건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반 총장께서 직접 나서는 계기나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요? 방북 전망은 어떻습니까.

“전 안보리 15개국 대표들과 주기적으로 만납니다. 제가 어젠다(agenda·주요 의제)로 삼고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안보리 회원국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필요할 때는 부탁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개별 국가 대표와도 협의합니다. 북한 방문 문제는 사실은 시기가 언제가 적절할지 보고 있는 거죠.”

-부시 정부가 7년 반 지났습니다만 부시 정부가 추구한 게 헤게모니(패권)입니까, 평화입니까.

“평화라고 봅니다. 헤게모니 추구는 시대에 안 맞고 부시 정부도 평화, 안정을 축으로 했다고 봅니다.”

-총장께서는 기후변화를 핵심 어젠다의 하나로 설정하고, 지난해 12월 발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발리 로드맵’을 채택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번 G8 정상회의에서도 기후변화가 주요 의제입니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 같은 선진국과 중국·인도 같은 신흥 개도국은 이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해 왔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양쪽의 이해를 어떻게 조화시키겠습니까.

“기후변화 문제는 선진국, 개도국 가리지 않고 지구적인 문제니까 모두 동참해야 해요. 다만 동참하는 데 있어 미국 등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이 크다는 겁니다. 따라서 책임은 공동으로 지되 대응은 차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중국과 인도도 이 문제를 점점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직 중국과 인도의 입장이 바뀐 건 아닙니다. 구속력 있는 온실가스 삭감 목표치에 합의하는 게 문제인데, 2050년까지 장기목표를 정하는 데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 목표는 최소 50% 삭감하는 겁니다. 장기 목표는 단기와 중기로 2020년까지의 구체적 목표치를 세워야 하는데 이번 G8 정상회의에서 그런 합의가 이뤄지기는 솔직히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내년 12월 코펜하겐 회의 때까지는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올해 폴란드 포즈난 회의에서 그를 위한 모멘텀을 마련해야겠습니다.”

-온실가스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의 하나는 선진국들이 갖고 있는, 개도국들에도 구속력 있는 감축 목표를 부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목표치 부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고정관념입니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개도국이 탄소 배출을 감축하면 그 실적에 따라 탄소배출권(Carbon credit)을 줘 그걸 다른 나라, 주로 선진국에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시장기반 방식(Market-based Climate Regime)입니다. 이게 해결책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유럽연합(EU)에서도 하고 있고, 이런 걸 지역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이번 G8 회의에서 유가 폭등을 주요 의제로 다루면서 아프리카 사람들만 부르고 산유국 국가 원수를 안 부른 건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을 부른 건 개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9월에 식량위기와 연관해 석유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소집했습니다. 많은 국가 정상이 참여할 겁니다. 고유가·식량위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겁니다.”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에너지가 식량난을 부추기는 것도 논란거리죠. 또 선진국들의 수출 통제와 농사를 안 지으면 돈을 주는 휴경보조금도 문제입니다.

“바이오에너지가 식량위기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검증이 안 됐어요. 미국과 EU가 하고 있는 수출 통제나 농업보조금 제도는 없애야 한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그럼 인기가 없을 텐데요.

“인기 얻고자 사무총장 하자면 어렵죠.”(웃음)

-한국의 중·고교·대학생들 사이에 반기문 열기가 높아 유엔본부와 산하 기구에 진출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준비하라고 권고하시겠습니까.

“국제적인 시각을 넓혀야죠. 제가 유엔총회 의장실에 근무하고 또 총장이 된 뒤에도 느낀 건데 한국인 가운데 유엔 근무를 신청한 이들 중 어학 때문에 안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면접에서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발표하는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한국인 지원자가 탈락하면 전형을 맡았던 유엔 직원들이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요. 그러나 한국인이라고 봐줄 수는 없어요. 저는 원칙대로 하라고 합니다. 언어가 안 되고 시각이 좁아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어쩝니까. 중간세대가 지금 국제기구 중위층 직책에 많이 신청하는데, 상당한 공직에 있었고 공부를 했어도 안 돼요. 학력으로는 충분히 자격이 되지만 국제적 시각이나 안목·이슈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면 유엔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정리=김현기 도쿄특파원(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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