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의 천사들 아주 특별한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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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구 보건소의 가정방문 간호사 김화순씨가 한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아픈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환자를 찾아가는 보건소가 돼야죠."

김화순(43) 간호사는 집집을 방문해 환자를 보살펴 주는 가정방문 간호사다. 전국 보건소 가운데 처음으로 2월 1일 문을 연 서초구 보건소 '방문간호센터'소속이다.

지금까지 일부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를 가정에 파견한 적은 있었지만 환자 실태를 파악해 의사에게 알려주는 차원에 그쳤던 반면 김 간호사는 혈압을 재는 일에서부터 피검사, 상처 소독 등 간단한 의료행위를 현장에서 직접 한다. 그래서 김 간호사는 움직임이 불편해 병원을 찾을 수 없는 노인 환자들에게 '귀한 손님'이다.

"저 왔어요."

"어서 들어와."

25일 오전 김 간호사가 서울 서초구 우면동 주공아파트의 한 현관문을 빠끔히 열었다.

자리에 누워 있던 김이역(55.여)씨는 아픈 몸을 일으키며 김 간호사를 맞는다. 김씨는 당뇨 합병증으로 정강이 상처가 심하게 덧난 상태다. 김씨는 제대로 소독하지 않으면 다리를 잃을 수도 있을 정도의 중증 환자다. 걷기가 힘들어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 간호사가 매주 두어 차례 찾아와 치료해주고 가는 것이다. 김 간호사는 상처를 꼼꼼히 소독한 뒤 "오는 금요일 다시 뵐 때까지 몸조리 잘하세요"라고 방문 일자를 약속하며 가방을 챙겼다.

김 간호사는 요즘 내곡동 정자순(75) 할머니에게 부쩍 신경이 많이 간다. 정 할머니는 척추를 심하게 다쳐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함께 사는 며느리가 두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 주고 있다.

"며느리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정 할머니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김 간호사는 "그러면 며느님한테 고맙다고 하세요. 며느님도 할머니 마음 잘 아실 거예요"라며 손목과 허리 등을 마사지했다.

김 간호사가 돌보는 환자는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들이다. 고혈압이나 뇌졸중 같은 만성 질환에 시달리거나 시한부 인생인 사람들도 많다. 간호사에, 말벗에, 호스피스 역할까지 함께 맡는 셈이다.

김 간호사의 하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빡빡하게 돌아간다. 오전에 보건소로 출근해 그날 찾아갈 환자들의 명단을 정리하고 가방을 꾸린다. 가방에는 혈압계.체온계.당뇨측정기부터 상처 치료에 필요한 각종 소독약까지 빼곡하게 담긴다. 가방을 들고 나와 직접 차를 운전하며 하루 5~6곳을 방문한다. 김 간호사는 오후 4시쯤이면 환자 방문을 마치고 보건소로 돌아간다. 환자를 돌보며 메모했던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환자 불편사항을 의사에게 보고해 처방이나 처치 지시를 받기도 한다.

"남편이 대구에서 일해서 주말부부예요.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 몇 년 전 딸(중2)과 아들(초5)의 격려로 (가정간호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면서도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대요."

서초구 보건소는 방문간호센터에 네 명의 가정방문 간호사를 배치하고 방문간호용 차량도 구입했다.

현장을 뛰는 방문 간호사는 김씨와 최영임(31.여)씨. 이들은 각각 36명, 35명을 맡아 매주 71곳의 할머니.할아버지를 돌본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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