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7개교 시험 무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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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5일 서울시내 90여 개 중학교가 치른 영어 듣기시험이 전면 무효처리됐다. 한 학교가 예정일보다 하루 먼저 시험을 치르면서 문제지가 학원에 유출돼 특정 지역 학교에서 만점자가 속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강남.성동.남부 등 7개 교육청 관내 97개 중학교에 지난 15일 치른 영어 듣기평가 성적을 전면 무효 처리하고 내신에 반영하지 말 것을 25일 지시했다.

성동교육청 관내 D중학교가 97개 학교가 15일 공통으로 치르기로 했던 영어 듣기평가를 하루 앞선 14일 치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시험을 하루 먼저 치른 것은 행정착오 때문이었다. D중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연구회로부터 처음 받은 공문에서 '4월 14일 (금) 시행'으로 기재돼 있어 14일로 시험일정을 잡았다"며 "출제를 맡은 '강남 중등영어교과 교육연구회' 측이 지난 2월 '4월 15일(금) 시행'으로 수정해 공문을 발송했다지만 이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시험일 일주일 전 '연구회'로부터 문제지를 건네받은 학교 측은 이를 인쇄해 14일 오전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D중이 시험을 실시한 뒤 문제지를 모두 회수해야 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D중 학생들로부터 정답이 표시된 문제지를 넘겨받은 학원들은 다음날 다른 학교에서 영어 듣기시험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 이를 복사해 학생들에게 넘겨줬다. 이에 따라 15일 시험을 치른 성동교육청 관내 학교에서는 만점자가 속출했다.

만점사태가 발생한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성적을 무효 처리하고 서술형 주관식으로 시험을 다시 보거나 2학기로 평가를 미뤘다.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따라 10~20점씩 내신성적에 반영하고 있는 영어 듣기평가 시험 결과를 내신에 반영하지 말 것을 97개 중학교에 지시했다. 강남 등 다른 교육청 관할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점수가 무효화됐다.

서울 K중 학부모 김모(43)씨는 "듣기시험 결과가 무효화됐지만 아직까지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교육당국의 시험 관리와 학교 측의 사후 대처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영어 듣기평가는 문제지만으로는 정답을 유추하기 어렵게 돼 있어 학교 측이 문제지 관리를 소홀히 한 것 같다"며 "앞으로 문제지 관리를 좀 더 철저히 하도록 각 학교에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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