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한국 온 히딩크, “한국 월드컵 개최지마다 ‘드림필드’ 만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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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외 아동을 대상으로 유소년 축구 대회 열어 제 2의 박지성을 찾고 싶습니다.”

거스 히딩크(62·사진) 감독의 다음 목표 중 하나다. 최근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를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을 8일 만났다. 그는 2003년 세운 ‘거스 히딩크 재단’이 시각장애아동을 위해 포항 한동대에 지은 제2호 ‘드림필드’(축구장) 개장식에 9일 참가하고, 14일까지 ‘제2의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에는 기복이 있게 마련이고 이는 축구 강국들도 마찬가지”라며 최근 월드컵 예선전 부진으로 비판을 받아온 허정무 감독과 한국 대표팀을 감쌌다. 그러면서 “(팬들도) 어려울 때일수록 지지를 보내주고, 선수들도 계속 전력을 다해 뛰면 다시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인터뷰 뒤 그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과 허정무 감독, 안정환 선수 등과 오찬을 함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년 만에 한국에 다시 오니 어떤가.

“한국에 오면 집에 온 듯 편안하다. 제2의 고향이랄까. 2002 월드컵 당시 한국팀의 성공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인간미에 매혹됐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참 행복했다. 한국인들은 처음엔 마음을 열지 않지만, 사귀면 사귈 수록 끈끈한 정이 있더라. 열정적이고, 카리스마를 갖고 돌진하며,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한국 축구가 성공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히딩크 재단’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의 소외 아동들을 돕자는 연인 엘리자베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에서의 성공과 한국인이 내게 준 사랑을 갚는 방법이기도 하다. 12세 안팎의 소외 아동을 대상으로 축구 교실도 열고, 전국대회를 개최해 제2의 박지성·이영표·김남일을 발굴할 계획이다. 축구는 가난한 사람, 불우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그게 축구의 아름다움이다. 2002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모든 한국 도시에 소외 아동을 위한 드림필드를 건설하는 게 목표다.”

-소외 아동들에게 원래 관심이 있었나.

“사회복지 일은 내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체육 교육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 프로 선수로 뛸 때 훈련이 없는 시간에 특수학교에서 일하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스포츠로 일깨우는 데 관심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터득한 그 아이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그 아이들을 내가 도와야 할 때다. 중요한 건 꿈을 계속 꾸는 것이다.”

-유로2008에서 기적의 4강을 연출했다.

“마법이네, 비결이네 하지만, 그냥 열심히 달린 결과다. 선수들을 분석하고 함께 뛰면서 최상의 선수를 골라냈다. 내가 선수들에게 원하는 건 넘치는 에너지와 집념이다.”

-한국도 러시아도 4강까지만 올랐다. ‘4강 징크스’라고도 하는데.

“한계는 모두에게 있다. 중요한 건 도전이다. 한국·호주·러시아는 국제축구연맹(FIFA)랭킹을 고려할 때 4강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4강으로 끝났다고 좌절해선 안 된다. 열정과 야망을 가지고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약체 팀을 골라 키우는 데 집중한다는 시각도 있다.

“내가 그런 팀을 고른 게 아니다. 그 팀들이 나를 고른 거다. 나도 강력한 우승 후보팀을 맡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유럽 무대와 국제 무대에서 4강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우승 못지 않게 대단한 승리다. 러시아에선 지금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넘쳐나고, 축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이런 변화가 결승에 오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현재 한국팀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축구엔 항상 기복이 있다. 프랑스나 잉글랜드 같은 세계 축구 강호들도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전략과 정책에 충실한 것이다. 어려울 때 지지를 보내고 긍정적으로 응원을 해주는 팬이 진짜 팬이다. 선수들도 온 마음을 다해 훈련과 경기에 임하면 결국 인정받을 수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올해 초, “러시아 대표팀을 마지막으로 감독에서 은퇴할 수도 있다”라고 했는데.

“아직 모르겠다. 내게 힘이 남아있고, 사람들이 날 ‘고약하고 심술궂은 노인네’로만 여기지 않는다면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축구에선 1~2년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글=전수진,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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