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고건 명지大 총장 부인 조현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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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명지대 고건(高建.58)총장 부인 조현숙(趙賢淑.57)씨를 만난 것은 커피향과 고전음악이 어우러진 대학로의 단골찻집에서였다.서울 동숭동에 살아온 게 15년 남짓.두 내외는 저녁식사를마치고 가끔 산보겸 이 단골집에 들러 통유리창 밖으로 오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곤 한다고.서울시장 재직때까지 「행정의 달인(達人)」이란 평을 들으며 꼼꼼한 전문행정관료의 길을 걸어온 高총장.부인 趙씨가 들려주는 이런 면모에선 단골찻집의 분위기 그대로 고전적 낭 만파의 냄새만 물씬 풍긴다. 사실 더욱 고전적인 것은 두 내외의 살아온 이야기다.대학 신입생때 서울대생.이대생의 문학서클에서 처음 만난 사연,긴 연애 끝에 미국유학을 떠나려던 趙씨를 高총장이 집요하게 설득해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 대학졸업하던 해 가을에 결혼식 을 올린 일,남편이 고시준비로 절에 들어가 아내는 시부모를 모시고 따로떨어져 살았던 신혼 1년간의 안타까웠던 심정.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로 動적인 남편-靜적인 아내라는 고전적 유형.같은 학년이긴 했지만 대학총학생회장을 지낼 만큼 리더십이 뛰어났던 高총장을 趙씨는 『친구같기보다는 존경스런 남편』이라고표현한다.『남편이 늘 한 수 깔아주는 심정이니 부부싸움도 잘 안된다』고.취미도 클래식음악.공연관람같은 공통부분을 빼고는 남편은 매주 테니스를 치지 않고는 못견디는 활동파,아내는 20년가까이 해온 서예와 아이들이 제법 자란후 다시 배운 재즈피아노를 즐기는 정서파다.
물론 살아오는 동안 항상 조화로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趙씨는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5.18직전 남편이 아내에게 큰귀띔도 없이 자기 소신대로 청와대정무수석을 사직하고 사흘간 잠적했을 때,갑작스레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12대 국회에 출마했을 때 등을 떠올린다.『요즘 출마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고 할정도로 갑작스레 선거를 치르느라 고생한 일이 생생하다고.
2년전 30년간 함께 산 시부모의 건강문제로,또 두 분만의 단출한 생활을 해보고 싶단 바람으로 평촌으로 이사를 가셨을 때도 참 힘든 순간을 겪었다.사실 동숭동과의 인연은 시아버지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전북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 던 시아버지(高亨坤.90)는 동숭동 문리대 시절 서울대 철학교수로 강의를하셨던 것.FM라디오의 고전음악방송을 녹음한 테이프가 5백여개였을 만큼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시아버지,함께 나가면 『동서지간아니냐』는 말을 들을 만큼 외모도 감 각도 젊은 시어머니(張貞子.81)와 떨어져 사는 게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단다.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 震(35).輝(34).偉(28) 외자로 지은 것도 시아버지.
자녀이야기가 나오자 趙씨는 『아들 3형제 말고 딸 둘,아들 둘이 더 있다』고 소개한다.결핵으로 아버지가 숨진 뒤 어머니마저 자살한 4남매의 사연을 신문에서 읽고 달려가 인연을 맺은 것이 한 20년쯤 되었다고.『이 아이들이 모두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덧붙인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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