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먹는 하마’ 많은 한국에 직격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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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 구조는 기름 값 변동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전체 산업 가운데 에너지 소비가 서비스 산업의 세 배 이상인 제조업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리는 중화학공업 비중이 유난히 높아 유가가 치솟을 때마다 경제지표가 휘청거리기 일쑤다.

경기도 안산에서 필름 회사를 운영하는 박모 사장은 기름 값 인상에 직격탄을 맞은 유화업체 대표다. 그는 “대기업 사이에 끼여 가격 협상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원료 값 인상분을 고스란히 적자로 껴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토탈이나 LG화학 같은 유화업체에서 합성수지를 구입해 공산품 포장용 필름을 만들어 현대차나 삼성전자에 납품한다. 올 초 t당 140만원가량 하던 합성수지 가격은 지난달 200만원으로 뛰었다. 합성수지 원료가 되는 나프타 가격이 연초 t당 881달러에서 이달 초 1246달러로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장용 필름 가격은 연초 그대로다. 박 사장의 공장에선 한 달에 합성수지 3000t 정도를 쓰니 원료 값만 18억원이 더 드는 셈이다.

그는 “유화업체에 원료 값 좀 깎자고 하면 ‘뉴스도 안 보느냐’고 핀잔만 듣는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필름을 납품하는 대기업에는 ‘다음 달까지 납품가를 인상하지 않으면 납품을 중단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깜깜무소식”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더욱 큰 문제는 올 하반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들이 석유화학 플랜트를 본격 가동하면서 국내 업체보다 원가 경쟁력에서 뛰어난 나프타 같은 유화 제품을 국제시장에 쏟아 낸다는 점이다. 한국의 플랜트업체가 수년간 호황을 누리며 지어 준 중동의 플랜트가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꼴이다.

중화학 산업 가운데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조선업계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올 상반기 46척의 유조선을 신규로 수주해 사상 최고의 호황을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올해 에너지 비용이 지난해에 비해 28%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차량 운행 자제와 야간작업 시 작업 외 공간조명 소등, 실내 냉방 기준 온도(섭씨 26∼28도) 준수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초대형 유조선으로 사상 최대의 성과를 내고 있는 대우조선해양도 20% 물자 절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계공업의 요람인 경남 창원공단 입주업체들도 기름 값 상승으로 인한 물류비용 급증을 호소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이용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정보기술(IT) 산업, 제조업 지원 서비스업, 관광업 같은 굴뚝 없는 산업에 대한 적극적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심재우·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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