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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해외 칼럼

북한 제재 해제 전 검증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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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26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그곳에서 생산된 플루토늄에 대해 검증 가능한 신고를 하는 대가로 대북 제재조치 일부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으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비판론자들은 핵무기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등이 포함된 완전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나 불능화를 거부했다는 점과, 시리아에 대한 핵확산 의혹이 해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합의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북한 핵무기에 쓰일 새로운 플루토늄을 만드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에 냉각탑 폭파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한다.

북핵 협의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6월 말의 미 정부 입장이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북핵 관련 기자회견에 주로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등장했고, 외교적 진전에 대해 환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발표는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그리고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주도했다.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메시지를 통제했으며, 냉정하며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하도록 했다.

미 행정부의 바뀐 태도는 북핵 합의가 주요 지지 계층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북핵 합의에서 빠진 내용이 있으며, 미국이 약속한 납치 일본인 이슈가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 역시 한·미·일 6월 협의 때 합의에서 빠진 부분에 대한 우려와, 효과적 검증을 위해 더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차츰 늘어가는 북한의 부정 행위와 비타협적 태도도 걱정거리였다. 영변 원자로 운영에 관한 1만9000쪽의 신고서에는 고농축 우라늄(HEU)을 만든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핵신고에 포함되지 않은 HEU 프로그램이 북한에서는 아직도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청문회 등에서 증언했다. 더불어 북한이 시리아에 핵기술 지원을 했다는 추가 세부사항이 알려졌다. 여기에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생산량도 예상보다 모자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원래 북한을 의심하는 입장인 데다 여기저기서 경고가 들려오자 제재를 푸는 것이 북한에 또다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수주 동안의 냉정하고 조심스러운 입장에서 몇 발 더 나간 조치들을 취했다. 적성국교역법 적용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로 그날 부시는 미국 내 북한 자산 동결을 계속하고 북한에 대한 현금 송금을 제한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그는 또 테러자금과 관련된 제재조치는 법대로 45일 이내에 해제할 것이며, 그 전에라도 북한이 핵신고에 대한 검증을 충분히 할 수 없도록 한다면 제재조치 해제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고, 워싱턴에서 일본 미디어들을 위해 기자회견을 하는 등 불안한 일본을 달랬다.

부시 대통령이 지금의 입장을 그대로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 미 관리들은 평양이 검증의 원칙에 대략 동의하는 대가로 제재를 해제하고 싶어 하겠지만 검증 절차가 완벽하게 이뤄진 후 제재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 벌써 너무도 많은 타협이 이뤄졌다. 철저한 검증을 포기한다면 평양에 6자회담 당사국이 진정한 비핵화에 대해 압력을 가할 의지가 없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정리=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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