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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과학정책 바로세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금은 군대에서 없어진 가장 인격 모욕적인 기합(氣合)의 하나가 서로 뺨때리기다.기합을 받는 사병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리며힘껏 때리지 않지만 자꾸 다그치면 나중에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서로의 뺨을 후려치게 된다.이 기합은 대부분의 경우 묘하게도 서로 때린 사람은 미워하게 만들지언정 모멸적인 명령을 내린 사람이 나쁘다는 것은 잊게 만든다.
80년대초 기이한 과정의 쿠데타로 집권한 5공세력은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을 사전봉쇄하기 위해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각 분야에서 통폐합조처를 감행했다.이때 과학기술계의 출연기관들이 강압적 통폐합을 당한 것은 뺨때리기 기합을 받 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당시 인문사회분야 출연 연구소들은 슬기롭게 통폐합 위기를 넘긴 반면 이공계 출연기관들은 부당한 통폐합 조처에는 항거하지 못한 채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서로 뺨때리기식 상호비판을 일삼은 적이 적지 않았다.
결국 전두환(全斗煥)정권의 무리한 통폐합은 6공 들어서면서 대부분 원상복구됐다.그러나 노태우(盧泰愚)정권도 90년대초 출연기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정립 시도를 정치적 목적으로 시도함으로써 결국 또 한차례의 연구소 두들기기를 감 행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게 됐고 냉소주의적 비판이 매우 강해지게 됐다.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과학기술계의 부정적 평가는 과학기술 주무장관의 잦은 경질에서 비롯된 정책변화에 기인하는 바 도 적지 않다.과학기술처장관은 67년 초대 장관부터 96년 현재까지 15대째며,초기의 최형섭(崔亨燮)2대 장관이 7년반이라는 역대 각부처 장관중 최장수 기록을 세운 반면 78년 3대부터 지금까지는 13명의 평균재임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하다.그 결과 80년대초 시작한 국책연구과제의 경우 그 정책 초점이 원천요소기술개발,핵심기술,대형과제,중점과제,선도기술 개발과제(G7 프로젝트),중급기술,스타프로젝트등으로 옮겨져 과학기술자들은 그때마다정책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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