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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값 부담 되지만 6년 타면 본전 뽑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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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20면

1997년 10월 일본 도쿄 인근 지바의 마쿠하리 전시장에서 개최된 제32회 도쿄 모터쇼엔 기상천외한 모델이 등장했다. 이 차는 일단 앞부분이 흡사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투구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의 관심사는 디자인이 아니었다.

각광받는 하이브리드

엔진 룸에 담긴 비기(秘技)였다. 도요타 직원이 보닛을 들어올리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전문가들의 입에서는 신음과 함께 탄성이 새어 나왔다.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가 첫선을 보인 순간이었다. 프리우스는 이해 모터쇼의 돋보이는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사석에서 만난 도요타자동차 관계자는 근심이 많았다. “이렇게 비싼 차를 누가 살까요”라며 기자들에게 물었다. 왜소한 소형차를 대형차 가격을 주고 살 소비자가 드물 것으로 봤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올 4월 프리우스는 세계 시장에서 누적 판매 100만 대를 돌파했다. 실적은 시간이 갈수록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배럴당 150달러를 넘보는 유가 덕분이다. 초기 판매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내년 대중화 원년 될 것”
미국에선 요즘 프리우스는 없어서 못 파는 자동차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 주문하면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연비가 좋아 기름값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조금 지급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지친 예약자들이 중고 프리우스로 눈길을 돌리는 바람에 상태가 좋은 모델은 웃돈이 붙어 오히려 새 차보다 비싸게 팔릴 정도다. 뉴욕 타임스의 유명 칼럼리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올 상반기에 쓴 칼럼에서 “도요타 딜러가 ‘당신 중고차가 새 차보다 비싸다’는 말을 전해와 기분이 좋았다”고 쓰기도 했다.

아직 국내에선 이런 하이브리드 열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차값이 비싼 데다 세제 혜택 등 아무런 지원책이 없는 탓이다. 판매 차종이 렉서스 LS600hL·GS450h·RX400h와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 등 일제 수입차 4개에 불과한 것도 붐 조성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이런 상황이 확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자동차가 국산 첫 하이브리드카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내놓을 계획이고, 정부도 이에 맞춰 하이브리드카에 각종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개별 소비세(차값의 5~10%)와 취득·등록세의 감면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차 값이 10%가량 싸지게 된다. 이때에 맞춰 도요타자동차도 국내 하이브리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엔 렉서스 3개 모델 이외에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할 방침이다. 프리우스는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보다 시내 주행에서 연비가 20%가량 높아 하이브리드카 중 최고 인기 모델이다. 자동차 칼럼리스트인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은 “내년이 국내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 활성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비 높고 친환경적
하이브리드카는 화석연료에서 해방된 차는 아니다. 다만 화석연료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차다. 그래서 과도기 모델이란 비판도 있다. 그렇지만 고유가 시대를 극복할 차로 당분간 하이브리드카 이외엔 대안을 찾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연비가 기존 가솔린 모델에 비해 훨씬 높고 배기가스 배출량도 확 줄였기 때문이다.

국내 시판 중인 4개 차종 가운데 값이 가장 싼 모델은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3390만원). 이 차의 엔진 배기량은 1339㏄로 전기모터 출력까지 합친 최대 출력은 114마력이다. 이 차는 휘발유 1L로 23.2㎞를 달릴 수 있다. 최대 출력이 배기량 1591㏄의 아반떼 1.6VVT(121마력)보다 뒤지지만 연비는 아반떼1.6(L당 13.8㎞)보다 68% 좋다.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의 차체와 엔진의 크기를 감안하면 가격은 비싼 편이다. 시빅 하이브리드에 외형과 성능이 근접해 있는 시빅 1.8(연비 13.3㎞)의 판매가는 2590만원. 그러나 연비가 높아 수년간 운행하면 본전을 뽑는다. 2일 현재 서울 시내 평균 휘발유 가격과 자동차세·보험료 등을 감안하면 시빅 하이브리드를 6.5년간 운행할 경우 시빅1.8 모델과의 차값 차이를 보전받을 수 있다. 같은 조건으로 렉서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하이브리드 모델인 RX400h(8000만원)를 일반 차 RX350(7260만원)과 비교해 보니 5년10개월을 타야 본전을 뽑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하이브리드카는 기름을 적게 소모하는 만큼 배기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렉서스 LS600hL은 1㎞를 주행할 때 190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반면 출력이 비슷한 BMW 760Li는 430g을 내뿜는다.

엔진과 모터 동력원 두 개
일반 차와 달리 가솔린 엔진과 함께 전기 모터와 축전지가 설치돼 있다. 도요타가 만든 하이브리드카는 저속에서는 주로 모터가 구동력을 제공한다. 이때 엔진은 정지된다. 저속이지만 축전지의 용량이 충분치 않으면 엔진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고속에서는 엔진과 모터가 동시에 작동하지만 축전지가 충분히 충전된 상태에서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은 평지를 달릴 땐 모터가 엔진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혼다의 하이브리드카 모델은 엔진과 모터가 늘 함께 작동한다. 두 회사 제품 모두 내리막길에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 바퀴가 저절로 굴러갈 때는 엔진과 모터가 작동을 멈추면서 배터리가 공회전 에너지를 이용해 충전된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엔진과 모터가 작동을 멈춰 에너지를 절감한다. 이때 나오는 공회전 에너지는 축전지에 충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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