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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예술이 된 이유 ‘모던 프렌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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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12면

우리는 흔히 프랑스·중국, 그리고 터키 요리를 세계 3대 요리로 꼽는다. 꼽는 순서는 언제나 동일한데 그 이유는 그 선정 근거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요리는 국가 이미지, 즉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양한(상상을 초월하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알고(믿고) 있다. 언제나 세 번째로 꼽히는 터키 요리는 이탈리아 요리에 종종 자리를 내주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세계의 푸드 트렌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태국 요리를 세계 3대 요리로 꼽는 사람들도 생겼는데 우리에게는 낯선 이슬람 문화권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슬람문화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의 책 『이슬람』을 보면 터키 요리에 대한 이해를 조금은 넓힐 수 있다. “술탄(황제)의 식사에는 매일 24가지 요리가 올랐고, 1년 내내 똑같은 요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는 내규가 있었다. 주방장과 궁중 요리사들이 목숨을 걸고 새로운 음식의 개발과 조리에 전심전력했을 것은 자명하다.” 생명을 건 요리사들의 ‘천일 레시피’라면, 그 방대함과 다양함이 충분히 상상된다.

그렇다면 프랑스 요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프랑스 요리를 세계 3대 요리에서 첫 번째로 꼽는 데 수긍하는 이유는 아마도 기록에 의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그 발전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 위 화려함의 정점, 오트 퀴진
기록에 따르면 이탈리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메디치(Medici) 가문의 딸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요리의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손으로 음식을 먹던 프랑스인의 식탁 위에 나이프·포크·스푼을 정착시켰고 우아한 테이블 세팅과 매너 등을 전했다.

프랑스 왕가를 둘러싼 음식문화는 루이 13~16세에 이르러 그 화려함이 정점에 달했고, 17세기에는 프랑수아 피에르 라 바렌이라는 셰프에 의해 오트 퀴진(Haute Cusine·상류층과 귀족들을 위한 고급 음식)의 기틀이 만들어진다. 프랑스 최초 요리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중세시대와는 전혀 다른 레시피를 소개하는 등 프랑스 요리에 세계적인 요리 문화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거쳐 19세기에 많은 레스토랑이 등장하면서 이때까지의 오트 퀴진은 상류층과 귀족들을 위한 음식(High cusine)에서 벗어나 지금의 프랑스 고전 요리로서 체계화된다. ‘오트 퀴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마리 앙투안 카렘의 역할이 컸다. 그는 현재 프랑스 요리의 정교한 기술의 틀을 세웠고, 100여 개가 넘는 소스를 기본소스로 정리해 표준화했다.

또한 당시까지 ‘한 상 차림’이 기본이었던 서비스의 형태를 한 번에 하나씩 서비스하는 지금의 코스 형태로 제안했다. 이는 요리 자체를 충분히 ‘즐기게 한다’는 의미로, 프랑스 요리의 고급스러움과 화려함, 그리고 자존심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재료 본래의 맛을 즐겨라, 누벨 퀴진
‘새로운 음식’이라는 의미의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은 1970년대에 고전 요리인 오트 퀴진에 반발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음식사조운동이다. 오트 퀴진의 특징이었던 과도한 소스, 화려한 장식 등의 무거움을 버리고 식재료 본연의 풍미와 질감·색조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가볍고 심플하게 요리하자는 것이 컨셉트.

마리 앙투안 카렘의 정교하고 화려한 스타일의 오트 퀴진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적이고 심플하게 재해석된 요리들을 선보이며 누벨 퀴진 운동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인물은 ‘근대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왕족과 귀족들을 위해 요리했던 카렘과 달리 최고급 호텔 세자르 리츠에서 산업화에 따른 신흥 부유층을 위해 요리했던 그는 시대상에 맞춰 접시에 내는 양을 줄이고 카렘이 개발한 소스들 역시 5개의 기본 소스로 줄였다.

또한 고급 요리를 선호하는 대중이 많아지면서 한번에 많은 양의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주방 안의 작업 동선을 군대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브리게이드’로 시스템화했다. 음식의 종류를 차가운 것, 더운 것, 먼저 내야 할 것, 나중에 내야 할 것 등으로 구분해 요리사의 동선을 합리적으로 만든 이 시스템은 현재의 주방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에스코피에의 초석 위에 누벨 퀴진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폴 보퀴즈다. 그는 오트 퀴진의 대표적인 특징인 크림이나 버터를 사용한 무거운 소스들을 최소화하고,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중요시하는 요리들을 선보였다. 75년 엘리제궁에서 선보인 ‘송로버섯 수프’ 같은 요리들은 지금도 프랑스 요리의 대표 메뉴로 꼽힌다. 요리 학교를 세우고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면서 프랑스 요리를 국내외에 널리 알려 그 명성을 떨치게 한 공 또한 크다.

창의성과 설득의 미학 요리, 모던 프렌치
식재료 본연의 특징을 살려 가볍게 요리하는 누벨 퀴진은 조리 시간을 단축하고 음식의 양을 적게 하되 시각적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접시 위 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10여 년 전부터 프랑스 요리 역사에 새롭게 등장한 ‘모던 프렌치(Modern French)’는 누벨 퀴진의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다. ‘프랑스 각 지방의 전통적인 고유 요리들을 골고루 응용한다’ ‘적은 양으로 서비스하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원재료 자체를 더욱 잘 즐길 수 있는 조리법을 개발한다’ ‘창의적인 디스플레이를 선보인다’ 등이 모던 프렌치의 특징이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20세기 프랑스 요리의 천재들-알랭 뒤카스, 피에르 가르니에, 조엘 로부숑-은 바로 이런 요건들을 충족하는 요리들을 선보이며 모던 프렌치의 창의성을 한층 발전시킨 셰프다.

일본의 유명 조리학교인 츠지원그룹교의 프랑스 요리학과 교수 노구치 나오키는 모던 프렌치의 정의에 대해 “프랑스 요리의 전통과 기본을 정확히 알고 있는 셰프의 손에서 재해석되어 새롭게 창조되는 요리”라고 설명한다. 또한 “셰프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요리를 표현하는지가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전통적인 프랑스의 식재료들을 이용하지만 기존의 조리법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은, 혀 위에서 프랑스 고유의 맛을 느낌과 동시에 또 다른 프랑스의 맛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요리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셰프는 예술가이면서 또한 과학자라고 하는데 모던 프렌치 스타일의 셰프들은 시인의 자질도 가진 것 같다. 모던 프렌치의 또 하나 특징은 메뉴명이 유난히 길다는 점이다. ‘○○풍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메인 □□과 ●●식의 소스 ◆◆…’ 가니시(장식)까지 설명하면 더 길어질 수 있다. 또한 레스토랑과 셰프의 창의력과 스타일에 따라 아주 다르게 표현된다. 접시 위에 빛나는 짧은 아포리즘처럼.

도움말 -츠지원 , 요리 노구치 나오키, 야마우치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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