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조직 없는 조직력'이 사회를 바꾸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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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휴대폰, 메신저와 블로그, 메일 등 새로운 사회적 도구가 등장하면서 조직비용이 급감했다. 덕분에 10년 전에는 조직 관리 비용 때문에 ‘잠재적인’ 조직이나 일로 머물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 지음, 송연석 옮김
갤리온, 344쪽, 1만5000원

1999년 1월 3일. 디트로이트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승객들이 7시간 머물렀던 사건이 있었다. 폭설로 전날 공항이 폐쇄돼 탑승구가 태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음식은 부족해졌고 변기는 흘러 넘쳤다. 기내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풀려난 승객들은 이후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결국 합의로 해결됐다. 그리고 항공사는 “이름뿐인 고객 서비스안”을 채택했다.

2006년 12월 29일. 거의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이었다. 승객들은 권리를 대변하는 그룹을 만들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2월 해당 항공사는 ‘항공승객 권리장전’을 채택했다. 승객들의 분노가 ‘조직 결성’으로 이어졌고, 조직은 순식간에 전국 규모로 확산됐다. 이 문제는 의회에서 다뤄졌으며, 언론에 보도되고, 항공산업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바꿔놓았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이 책에 따르면 ‘도구’가 달랐기 때문이다. 인터넷, e-메일, 블로그, 메신저 등의 새로운 도구를 통해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광범위하면서도 신속하게 뭉칠 수 있었다. 과거에 일방형이었던 미디어가 ‘공유형’을 넘어서 ‘협력형’ 플랫폼으로 진화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회적 도구가 ‘새로운 미디어 주체’와 ‘신종 소비자 군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굳이 미국 사례를 들 이유도 없다. 국내에서도 2005년에 일어난 ‘개똥녀’사건을 비롯, 블로그·카페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매섭게 번져나간 ‘집단 행동’이 한 둘이 아니다. 뉴욕대 인터렉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교수인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10년 전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던”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집단 행동의 출현과 그 역동성이다.

그는 현재를 “혁명의 시기”라며, 이 원동력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 이론인 ‘코즈의 정리’ 개념도 빌려왔다. 조직을 형성·유지되려면 비용이 조직이 도모하는 목표나 성과보다 경제적이어야 하는데, 과거에 이 비용 때문에 생길 수 없었던 일들이 코즈의 하한선을 뚫고 올라왔다는 것이다. 즉, ‘조직 비용 제로 사회’가 도래해 “완전히 새로운 대중과 새로운 세상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조직 없이도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과거와 다르다. 이른바 ‘조직 없는 조직력’이 생겼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소비와 생산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과거에 특정 그룹에게 독점돼 있던 특정 능력이 대다수 시민에게 주어진 것도 큰 변화다. 의사소통의 신속성 덕분에 ‘사전계획’대신 ‘실시간 조율’이 늘어나 집단행동의 양상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저자가 이 시대를 ‘혁명’이란 부른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사회적 도구들이 “현대사회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상당 부분은 조직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회·정치운동을 염두에 두고 쓴 글 같다. 그러나 저자는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 특히 초점을 맞췄다. 위키피디아·리눅스 등의 사례를 들며 과거의 전통적 위계구조보다는 느슨하고 유연한 조직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저자는 흥미진진하게 변화와 역동을 설명했지만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대안’이나 방향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다만 변화의 “물길을 따라 빠르게 떠밀려 내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낡은 상식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변화”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원제 『Here Comes Everybody: The Power of Organizing without Organization』.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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