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문학3.서라벌예대.중앙대 文創科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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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는 김동리(金東里)의 아성이었다.용장(勇將)밑에 약졸(弱卒)없다는 옛말대로 김동리가 손때묻혀 키운 맹장들이 오늘의 한국문단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가 서라벌 예대 문창과를 정예부대로 만들기 위해 얼마 나 전심전력했는지 알 수 있다.
1954년에 개설한 서라벌예대 문창과와 그 학풍을 고스란히 계승한 중앙대 예술대 문창과는 특기자 교육의 성공사례로 압권이다.작금에 앞다퉈 문을 열고 있는 여러 대학의 문창과들이 뒤늦게나마 이를 입증하고 있다.서라벌 예대 문창과는 지난해 작고한김동리란 거인이 한국 문단의 종가(宗家)를 자임하면서 그 적자(嫡子)들의 배출을 도모한 산실(産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아니다.한때 한국문단 안팎에서 흔히 「김동리 사단」이라 일컬어지던 숱한 유.무명 문인들의 구심 점이 서라벌 예대 문창과 출신이었음은 공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필자가 밖에서 지켜본 바로는,또는 문단의 한 후생으로 바라본바로는 자신이 한국문단의 적자였던대로 김동리는 서라벌 예대 문창과 및 중앙대 문창과의 명실상부한 가장이자 그 후손의 위엄스러운 사부(師父)였다.그의 슬하에서 습작의 오문 (誤文)부터 일일이 지적받아온 오늘의 숱한 중견 문인들이 그점을 방증한다.
우선 유명 문인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58년 서라벌예대 문창과 동기생들을 들 수 있다.역사소설의 주체를 서민으로 못박고 그들의 애환과 풍속을 집중적으로 찾아내 아로새긴 『객주(客主)』『화적』의 작가 김주영,최근까지도 단편소설의 정 수를 보여주는 김문수,희곡과 소설에서 빛나는 재능을 과시한 천승세,현대소설과 역사소설을 통틀어 가장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유현종 등이 그들이다.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시조 작단의 좌장으로 손색없는 이근배,아동문학의 중진 조장희 등도 58학번이고,시작과 시론을 겸비한 박이도(경희대)교수도 한 동아리다.
이들 58학번의 뒤를 잇는 후배 문인들은 거의 기라성같다.60학번의 김원일은 남북 분단의 실상을 구체적으로,또 원근법적으로 조명해 사실주의 소설의 한 전형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61학번에서는 이문구.조세희.박상륭.한승원 등의 짱짱한 중견소설가를 양산했다.특히 이문구는 우리말의 보고(寶庫)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희귀한 스타일리스트로서 『관촌수필(冠村隨筆)』『우리동네』등의 연작단편을 통해 농촌사회의 전면 적인 붕괴 국면을 적나라하고 정직하게 묘사한바 있다.문장을 극도로 아끼는 과작의 조세희는 베스트셀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산업사회의 소외 문제를 극명하게 조탁한 독보적인 소설가다.오래전에 이민을 가서 꾸준히 신비주의 문 학을 개척하고 있는 박상륭의 소설은 한국소설의 유일무이한 비경(비境)에 값한다.또한 남도지방의 어촌 풍정과 그정서를 탄탄하게 그리고 있는 한승원의한(恨)에의 모색은 우리 문학의 구경(究竟)에 대한 탐구로 기능한다. 이상의 유명한 중견 소설가들이 하나같이 드러내고 있는선명한 주제의식,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완벽한 문장에의 집착,소재의 조작에 대한 꼼꼼한 장인정신등은 한국소설의 한 모범이라 하기에 족하다.그들이 거둔 성과야말로 한국 소설의 현재 수준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는데 어느 모로 보나 그들은 한국 근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어온 사부 김동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게 사실이다.
해방공간의 좌.우익 문학논쟁에서 쟁쟁한 이론가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명 단편을 쓴 소설가로서,또 스승의 모범으로서 김동리는 그들에게 언제라도 뛰어넘어야 할 커다란 벽이었다.그들의 그런 도전의식은 제각기 다루고 있는 다 양한 소재에의 변주 능력과 특이한 문채 감각들에서도 확연히 드러나 있다.
문학이 생성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극복의 대상임을 일찍이 체득했다는 점에서도,김동리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한국 작단의 행복한 적자들인지도 모른다.
크게 말해 김주영부터 이문구까지는 이른바 4.19세대에 속한다.그들이 70년대 한국 작단의 한 평지돌출이었던 이면에는 6.25와 4.19혁명을 몸소 체험한 마지막 세대라는 사실과 그생생한 경험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지면이 많아졌 다는 사정이 숨어 있다.
***극복대상으로서의 東里 이문구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문인들 중에는 이동하(65학번.중앙대 문창과 교수)와 오정희(66학번)가 단연 발군이다.최근에는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진력하느라작품 활동이 뜸한 편이지만 이동하는 『장난감 도시』에서 서정적인 문체로 소 시민의 간절한 소망을 단정하게 소묘한 바 있다.
오정희는 구성의 완벽,일물일어(一物一語)에 집착하는 적실한 문장력 등으로 단편소설 미학의 최대치를 추구하는 작가임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서라벌 예대 문창과 및 중앙대 문창과 출신 문인들은 흔히 「미아리 시대」와 「흑석동 시대」를 구분한다.서라벌 예대가 2년제 초급대학으로서 미아리에 교사를 두었다가 4년제 정규대학으로개편되면서 중앙대 본교가 있는 흑석동으로 옮아앉 았기 때문이다.소설가 쪽에만 국한해 말하면 66학번들인 오정희.윤정모.정종명 등이 「미아리 시대」의 마지막 주자들이다.
「미아리 시대」는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의 슬하에서 적잖은 시인을 배출했다.60학번의 신중신.송수권을 필두로 시조 작단의 중진인 윤금초(64학번)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65학번에는 미당의 수제자를 자임하는 임영조와 과작의 시 인 김형영이쌍벽을 이룬다.
잘 알려졌듯이 70년대 중반부터 한국문단은 군사정권의 파행적인 정치 행태,산업사회로의 진입과 아울러 농촌사회의 급격한 와해,반체제 지식인들의 집단적인 각성 등 사회상에 발맞춰 종래의가부장적인 문단 질서가 무너지고 일종의 파벌식으 로 뿔뿔이 찢어진다. 그 주요 요인으로는 계간지 및 상업지의 속출과 문학의상품화를 들 수 있겠는데,등단제도의 다양화가 더큰 몫을 담당했다고 보여진다.중앙대 문창과가 본격적으로 「흑석동 시대」를 맞으면서 「미아리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문인 배출이 뜸한 사실도문학에서의 도제제(徒弟制)가 여러갈래로 나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원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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