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소설 영어번역‘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암만혀두 자네 어메가 행실이 좀 궂었덩개비네!” (채만식 ‘태평천하’중)

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떨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사투리에 익숙지 않다면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이를 “Yes, truly, your mother must have been given to loose conduct”라고 옮긴 부분이 한국 소설 영어 번역본의 우수한 번역 사례로 꼽혔다.

“우리 고유의 색이 묻어나는 이런 문장들을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읽기 쉽게 번역해야만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윤지관 원장의 말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2006년 12월부터 올 6월까지 영어로 번역된 한국소설을 평가하는 작업을 했다. 이광수부터 공지영까지 41편의 소설이고 번역종으로 따지면 72종이다.

이중 절반은 오역이 많아 작품 이해가 어려운 수준으로 드러났다. A+부터 C0까지 총 6등급 중에 A+등급을 받은 번역본은 한 권도 없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B등급 이상을 받았다. 작품의 미학적 효과를 충분히 전달하지는 못해도 기본 요소는 상당히 전달된다는 평이다. A등급을 받은 7종의 번역본 중 외국인이 단독으로 번역한 것은 한 권도 없었고, 전체적으로는 내외국인 공역본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평가 작업을 해보니 생각보다는 긍정적이었죠.” 윤 원장은 갈 길은 멀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영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은 ‘아예 읽을 게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객관적 검증을 해보니 적어도 절반은 ‘읽을 만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반면 평가위원장을 맡은 송승철 교수(한림대 영문학)는 좀 더 혹독한 조언을 했다. “원문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겁니다”라며 원문 그대로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이 독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집게 손가락을 뜻하는 ‘염지’를 ‘엄지’로 오인해 ‘thumb’으로, 주먹감자를 ‘potato’로 오역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한국 문학이 제대로 번역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송 교수는 “한국어를 아주 잘 아는 외국인이 한국 문학을 번역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 소설을 한국인이 번역해야 더 감칠맛 나게 읽히는 것처럼 번역의 원칙상 영어권 독자를 위한 번역물은 영어가 모국어인 번역가가 해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공선옥의 ‘우리 생애의 꽃’ 등 장편소설 9편을 한국인 부인과 함께 번역한 브루스 풀턴(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아시아학과) 교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죠.” 그러면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단편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지만, 영미권 독자들은 장편을 선호합니다. 작가들이 세계를 넓게 볼 필요도 있죠”라는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송 교수는 “이상의 ‘날개’가 얼마나 어려운 작품입니까. 사실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훌륭하게 번역(월터 류, 유영주 공역)했죠”라며 이런 노력이 지속된다면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머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주리 기자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