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對立 깊게하는 대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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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새 워싱턴에 파티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지적했다.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속에서도 활기있고,지적(知的)이고,정치적인 파티가 풍성하다고 해 워싱턴은 「파티 타운」이라는 호칭도 갖고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요즘 「워싱턴의 발칸화」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고 있다.
워싱턴의 정치세력간 갈등과 양극화 현상이 마치 민족분쟁에 시달리는 발칸지역을 방불케한다는 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양상은 지난해 중간선거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의사당에 대거 진주한 공화당 신참의원들은 보수적이고 지방적이다.당(黨)지도부가 다른 정당과 협상하는 것 자체를 후퇴로 인식한다. 신참세력의 등장과 대조적으로 고참세력의 워싱턴 퇴각이두드러지고 있다.상원에서 13명이 재출마 포기를 선언했고,하원에서는 무려 35명이 은퇴를 발표했다.앞으로 이들을 따를 사람들이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퇴거인사들은 독립적이고 중 도적인인물들이다.대부분 신축성있는 입장을 취해온 온건파 정치인들이다. 온건인사들의 퇴각은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의원선거가 실시되는 정치의 해라 벌써부터 정당대결이 격화돼 오고 있다.
균형예산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짐으로써 공화당과 백악관(민주당)이 모두 극도로 감정이 나빠져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빌 클리턴 대통령의 23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의 연두교서 연설은 한층 각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은 사실상 그의 재선 선거운동의 개막이었다.그는 이 연설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집권 제2기 국정지표를 설명하는가 하면 예산협상을 둘러싸고 자신을 괴롭혀온 공화당을 유효적절하게 공략했다.
클린턴이 연설을 계속한 60여분동안 민주당의원들은 80여회에걸쳐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공화당에 속히 예산협상을 타결지을것을 촉구하면서 『결코 다시는 정부를 폐쇄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자 민주당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공화당의원들은 시종 정중했다.클린턴이 자신들을 비판할 때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지만 다른 대목에선 민주당의원들 박수에 흔연히 동참했다.어디에서처럼 야유나 고함도 없었고, 일제 퇴장도 없었다. 그리고 대변인들의 거칠고 노골적인 성명( 聲明)대결도없었다. 이날 클린턴 연설에 대한 공화당의 반응은 상원 원내총무 보브 돌의원의 대응 TV연설이 있었을 뿐이다.파티가 실종될정도로 워싱턴의 정계가 황폐해지고 있다 해도 지켜야 할 전통과예절은 계속 존중되고 있는게 확인됐다.
서울에서 각종 현안이나 쟁점에 대해 사사건건 각당 대변인들이야비한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말씨름을 벌이고 감정을 긁어대는 작태와는 무척 대조적이다.정당들이 대변인들을 내세워 정치 선후배나 상대당내 지위고하를 아예 깔아뭉개고 심지어 반대당 총재까지안하무인격의 비난과 야유를 서로 퍼붓는 일은 책임있는 정치인들이라면 할 수 없는 비겁한 대리전(代理戰)일 뿐이다.
상황이 나쁠수록 대변인을 앞세워 비생산적인 성명전을 일삼을게아니라 당대표를 포함한 책임있는 당직자가 직접 나서서 입장을 밝히고 상호 대화도 나누는 풍토가 아쉽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타협의 정치다.
타협은 상호이해와 신뢰 가 바탕이다.
정당의 대변인을 폐지하는 것이 그 첫 조치일 수도 있지 않을까.미국 정당들에는 아예 우리식의 대변인 제도가 없다는 점을 참고해볼 만하다.
(미주총국장) 한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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