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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유해물질 관리 이대론 안된다-노동현장 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해 직업병 판정을 받고,다니던 화학회사를 그만둔 P(39.인천시남구주안동)씨는 요즘도 손.발이 짜릿하기만 하면 소스라치곤 한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별다른 후유증이 없을 것』이라는 병원측의 설명이 있기는 했으나 후유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시동구논현동 J회사에 근무하던 P씨가 쓰러진 것은 94년12월.병원으로 옮겨져 60일동안의 입원치료 끝에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 판정을 받고 회사를 퇴직했다.
당시 자신과 함께 제약회사에 납품하는 약품 원료를 생산하는 공정에 근무했던 4명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증세가나타나 치료를 받았다.
P씨등은 2백ℓ짜리 드럼통에 들어있는 액체 아세톤등을 펌프를이용,탱크에 집어넣고 탱크배관을 통해 원심분리기로 들어간 화학물질이 고체가 되면 꺼내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보호장구는 면으로 된 마스크가 유일했을뿐 아니라 작업장에는 강제순환방식의 배기시스템마저 없어 휘발성 높은 아세톤을 그냥 마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커다란 사회문제를 불러 일으켰던 경남양산군 LG전자부품의 경우는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부족때문에 朴모(26.여)씨등 23명의 근로자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다. LG전자부품은 94년 2월 부품 세정제로 기존의 프레온대신 일본 천가금속에서 「솔벤트 5200」을 수입,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94년 10월부터 근로자들이 두통등을 호소하더니 지난해에는 「솔벤트 5200」을 사용했던 택트(전자부품)스위치 2과 근로자 23명이 생리중단.무정자증등 생식기능 장애라는 치유하기 힘든 병에 시달리게 됐다.노동부의 역학조사 결과 이들은 모두▶백혈구.혈소판감소▶난소기능저하▶정자감소▶골수기능 저하등 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LG전자부품측은 「솔벤트 5200」에 안전수칙등을 설명한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가 첨부돼 있었는데도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는 이유로 이를 전혀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수칙에는▶작업시 보호구 착용▶증기를 많이 흡입치 말것▶자동주입기 사용 또는 배기장치 가동등이 명시돼 있었다.
회사측은 문제가 되고서야 세정액을 프레온의 일종인 HCFC로대체하고 모든 시설을 자동화시켰다.현재 전국에서 유해화학물질을취급하고 있는 사업장은 2만3천개.이중 벤젠.염화비닐등 발암물질로 확인됐거나 추정되는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1천여개 사업장은「특별관리」업체로 지정돼 노동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유통되고 있는 3만1천여종류의 화학물질중 유해성 조사를 하지않은 것도 많아 대부분의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은 직업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더구나 직업병 발생건수 자체는 감소하고 있으나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한 화학물질의 유통량이 90년 6백86만에서 94년 16만6천으로 급증하면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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