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공연기획 참여 새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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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음악평론가의 역할과 위상이 바뀌고 있다.
음악평이 TV의 위력에 밀려 옛날처럼 음악가를 돋보이게 하거나 수명을 단축시킬 만한 영향력을 갖지 못해 다매체시대에 맞는새로운 평론가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지금까지 평론가들은 음악회가 끝난 후 신문.잡지 기고를 통해 공연평을 쓰는 것에 만족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변신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다음은 그 실례들.
오는 3월31일 개막되는 교향악축제엔 KBS교향악단과 전국의15개 시립교향악단이 참여한다.지방시대를 맞아 예술의전당이 각자치시와 공동주최하는 이번 음악제는 시의회.재경향우회.지방출신기업인들의 시향 후원을 유도하기 위한 리셉션 으로 이어진다.
해를 거듭하면서 청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교향악축제가 이같은 변신을 시도한 것은 지난해 95교향악축제를 보고 음악평론가 홍승찬(34)씨가 쓴 평론에서 이같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결과다.
예술의전당 공연부에서도 생각은 있었으나 이 평론에 힘입어 비로소 실천에 옮기게 됐다는 것.이번 기획은 음악평론으로 객관화된 음악계의 여론을 수렴했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9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테너 김영환 독창회로 시작된 「BMG 리사이틀」 시리즈도 음악평론가들의 의견이대폭 반영된 젊은 연주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보듯 교향악단의 성패는 기획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휘자 한명이 기획.곡목선정.연습.연주등 많은 일을 도맡아 권력집중으로 오케스트라 단원과의 마찰이 빚어지기가 일쑤였다.따라서 지휘자.단원간에 완충 역할을 할 수있는 기획자의 위상이 제고돼야 한다.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교향악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미국.일본처럼 공연 직전 평론가들이 해설을 맡는「프리콘서트 토크」프로그램과 평론가들이 기획하는 특별연주회를 갖는 등 다양한시도가 필요하다.
「프리콘서트 토크」는 연주자가 연주직전 곡을 해설하는 「렉처콘서트」와 달리 아무 형식없이 평론가 또는 연주자가 청중과 대화하는 형식.청중들의 질문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음악회의형식을 깨는 콘서트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예진흥원에 해당되는 미국 예술진흥재단(NEA)에서 각 교향악단에 지급하는 지원금은 정기연주회가 아닌 테마콘서트.학교방문콘서트.청소년교육 프로그램.가족동반 콘서트 등 특별프로그램을 위한 것.1~2년 계약의 상주작곡가나 전속편곡가를 활용해 편곡.신작을 위촉하거나 작곡자.독주자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하고 단원들의 독주회를 열어주는 등의 특별 프로그램이 정착돼 있다.
그러나 국내 교향악단에선 전문인력 부족으로 기획다운 기획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따라서 음악계에서는 당분간 음악평론가들을 기획단계에 적극 활용해 현장체험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발휘할 수있도록 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평론가가 기획해 성공했던 음악회는 피아니스트 이경숙,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등이 출연한 「이강숙 초청 독주회」시리즈와 음악평론가 탁계석씨가 기획했던 「해설이 있는 가정음악회」등이 있다.이처럼 음악평론의 위상과 역할의 재검토 가 요청되고있지만 대부분의 음악평론가들이 음악계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기보다 정실에 치우친 평론으로 나쁜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아직은 적지 않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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