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원의 저주, 무자원의 축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8호 32면

유가와 식료(食料), 주요 원자재 값 급등으로 지구촌 소비국들은 전례 없는 3중고를 겪고 있다. 아시아의 성장 센터가 수입인플레로 발목 잡히고 아이티에선 식료품 급등이 폭동을 불렀다. 이 엄청난 외부 악재 때문에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한 정치인과 정책당국자들이 슬금슬금 뒷전으로 주저앉고 있다.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자원부국들은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석유 부호들은 물론 ‘초호황’이다. 지구촌 고급인력은 물론 단순노동직까지 두바이 등 중동지역을 기웃거리고, 산유국 국부(國富)펀드들은 유럽 금융센터의 초고층 빌딩에 투자하며 런던 시티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원부국의 국민들 삶은 겉모양과는 딴판이다. 자원이 내린 축복 때문에 정치가 부패하고 경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정책의 딜레마로 곳곳에서 자원빈국들 못지않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

풍요한 부존자원이 그 나라 정치·경제에 가져오는 부정적 현상을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로 부른다.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자원부국들이 한국이나 대만 등 자원빈국들보다 경제성장과 발전이 크게 뒤지는 현실은 분명 ‘풍요의 역설’이다. ‘바보들의 황금’으로 놀림받기도 한다. 석유 수출대금이 쏟아져 들어와도 이를 제대로 관리할 공공부문이 없고 소수의 특권층에 부가 몰리면서 대다수 국민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들을 가리켜 ‘석유국가 (Petro-state)’로 부른다. ‘두바이 모델’로 상징되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최근 발생한 임금인상 소요는 이들 석유국가들의 내부 고민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석유 붐에 따른 혜택은 고사하고 식료 및 에너지가격 급등으로 빈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과 플래티넘의 남아프리카, 커피와 홍차의 케냐, 구리의 칠레, 콩·밀·육우 등 농축산물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자원부국들이 부의 분배와 주도권 다툼, 소득불평등 등 자원의 축복 아닌 저주로 저마다 신음 중이다. 1960년대의 ‘네덜란드 병’ 역시 자원의 저주다. 천연가스 노다지로 흥청망청 지출을 늘리다 통화가 과다 절상되고 수입은 급증하고 수출은 격감돼 산업 자체를 죽여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자원의 저주는 부패 심화와 경제성장 저해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 자유와 민주주의 신장을 지연시킨다. 석유나 광물자원의 수출에 과다 의존하는 나라일수록 민주화에 소극적이며 국제유가와 산유국 국내 자유는 반비례한다는 조사 결과도 주목을 끈다.

자원부국의 위정자들이 국민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세금을 거두지 않고, 막대한 자금 공세로 민주화 욕구를 잠재우며, 경찰과 보안 및 정보 부문에 과다 투자해 민주화 운동을 원천봉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수 인재들이 특정 자원 부문에 편중돼 국가 인적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교육을 게을리해 성장 및 발전의 동력을 스스로 고갈시킨다. 제2의 산유국으로 석유·가스가 버팀목인 러시아는 전체 근로자 6700만 명 중 이 부문에 고작 200만 명을 고용한다.

페르시아만 아랍 산유국 가운데 자유공명선거를 처음으로 실시한 나라가 바레인이었다. 여성이 입후보하고 현대식 노동법도 도입되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석유자원 고갈이 예상되는 나라가 다름 아닌 바레인이라는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천혜의 부존자원을 축복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가 노르웨이다. 석유의 첫 발견과 동시에 이를 국민들 공유재산으로 입법화하고 모든 석유판매 수입을 국가석유기금에 별도로 예치해 정치로부터 중립적인 중앙은행(노르웨이은행)에 관리를 맡기고 있다. 1905년 유럽 최빈국에서 오늘의 고복지 선진민주국가로 우뚝 선 데는 석유자원의 현명한 관리가 큰 몫을 했다.
풍요한 자원 때문에 못사는 나라가 있고 우리처럼 자원의 빈곤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공한 나라도 적지 않다. 소통의 리더십으로 국가 역량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유가와 식료, 원자재 값 급등이 경제 살리기에 큰 악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이를 불가항력 운운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MB 물가 7%, 성장률 4%, 청년실업 7%’라는 ‘신 747’은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낙착되고 말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