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보균의 세상 탐사

대한민국 그들,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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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대표도 먹었다. 워싱턴 근처 우래옥에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갈비를 들었다. 그는 1999년 조지 워싱턴대 객원교수였다. 귀국 뒤 다시 워싱턴에 가서 특파원들을 만날 때면 주로 그 음식점을 찾았다. 정세균 의원도 먹었다. 젊은 시절 쌍용의 미국 지사에서 10년 근무했다. 그의 단골인 뉴욕 32번가 강서회관은 미국산 쇠고기 갈비구이로 유명하다. 추미애 의원도 먹었다. 그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객원연구원으로 1년 이상 있었다. 민주당 간판인 세 사람도 인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 쇠고기를 맛본 기간, 횟수로 치면 이들은 특별나다. 그 정도 미국 생활이면 보통 사람도 미국 쇠고기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한다. “미국인도 불안해서 소를 수입해 먹는다. 미국 소는 20개월 넘으면 광우병 잘 걸린다”는 얘기가 얼마나 형편없는 괴담임을 경험으로 안다. 그러나 민주당 핵심인 이들은 괴담의 왜곡·과장을 지적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거나 무지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의 바닥 지지율은 오를 기색이 없다.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추락해도 마찬가지다. 새 대표를 뽑는 7·6 전당대회는 흥행 실패의 예감이 풍긴다. 폭력과 악성 괴담이 판치는 광화문 밤 거리를 기웃대고 있어서다. 책임정당으로서 자기 색깔 없이 촛불에 편승하려 한다. 쇠고기 협상의 엉성함을 따지려면 국회에 들어가야 실력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거리 정치에 주눅이 들어 있다.

그런 비겁함과 무능으로 치면 단연 청와대와 한나라당이다. 26일 한나라당 지도부는 MBC PD수첩을 성토했다. “허위보도로 나라를 광우병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 프로가 방영된 지 거의 두 달 만이다. 버스가 떠난 뒤 수선을 떠는 듯하다. 씁쓸한 뒷북 치기다. 그 프로의 선동성과 왜곡에 대한 국민적 각성이 넘쳐나 버린 뒤다. 다음날 홍준표 원내대표가 나서 "반미 시위꾼들이 광화문을 폭력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가 다시 저격수를 자처했지만 혼자로는 버거운 느낌이다.

PD수첩이 처음 방영됐을 때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몹시 취약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광우병 공포심이 퍼지는 속에서도 한국인의 체질을 모독, 저주했다는 여론이 한쪽에 형성됐다. 한국인은 오늘 사막에서 일하고 내일은 시베리아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적응력이 탁월한 DNA를 갖고 있다. 그런데 몹쓸 병에 잘 걸리는 체질로 비하했다는 분노 서린 반감이었다. 그때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과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런 분노가 근거 있고, 이유 있는 개탄임을 대변인 성명으로 확인해줬어야 했다. 이들은 나서지 않았다. PD수첩의 부정적 파괴력이 얼마인지 가늠하지도 못한 채 시국 주도권을 넘겨줬다. 게으르고 문제의식이 부족한 탓이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는 밤만 되면 전경이 쌓아준 산성의 뒤로 물러나 있다. 광화문 밤거리는 무법천지다. 국정 유고(有故)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의 어설픈 고뇌와 침묵은 여전하다. 27일 이 대통령 주재 비서관회의 뒤 나온 얘기는 기막히다. “극렬 시위가 국민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고 했다. 시위대는 국민의 인내만을 시험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을 겨냥해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조롱하며 묻고 있다. 청와대 수석들은 농성 현장에 부지런히 나가 ‘소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맹형규 정무수석은 철야농성하는 민노당 의원들에게 침낭과 음료수를 전달했다고 한다. 소통은 당연하다.

지금은 소통보다 중요한 것이 용기다. 대통령의 기본 책무는 법질서 유지다. 청와대는 용기와 신념이 허물어진 상태다. 지지자들도 탄식하고 있다. “이렇게 무능하고 허약한 줄 몰랐다”고 실망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유약한 침묵은 언제 깨질 것인가. 국민을 둘러대지 말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용기의 리더십만이 정권의 새 출발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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