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더 많은 권리 행사하는 이상한 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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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14면

형사사건에서 변호사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가끔가해자를 엄벌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는 때가 있다. 피해자 가운데는 상대방을 구속해야 자신의 피해를 배상받고, 보복감을 충족시킬 수 있으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해자를 구속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또 하나의 가혹행위인지라 검찰이나 법원은 웬만하면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도록 한다. 따라서 의뢰인의 한(?)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다. 요즘 세상에 ‘무슨 수’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고소인의 대리를 하면서 답답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범죄 피해자 보호법에 따르면 피해자는 수사 담당자와 상담하거나 재판 절차에 참여해 진술할 수 있다.

가해자에 대한 수사 결과, 공판 기일, 재판 결과, 형 집행 및 보호관찰 집행 상황 등 형사절차와 관련된 정보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경찰에서는 ‘사고사실 확인서’라는 이름으로 사건 발생의 일시·장소와 피해 상황을 기재한 서면을 피해자에게 주는 것이 고작이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려줄 뿐 주거지나 전화번호도 함구한다. 가해자의 명함이나 연락처를 받아 놓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수가 허다하다.

한 술 더 떠 법은 형사절차와 관련한 정보라도 가해자의 명예, 사생활, 생명·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믿지 못하는 모양새다.

수사 과정에서는 검찰에서 공소제기·불기소·기소중지·참고인중지·이송 등 처분 결과만 간신히 알 수 있을 뿐이다.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가해자는 어떤 내용으로 수사를 받았는지, 목격자나 참고인은 어떤 내용으로 진술하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가해자가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는 공판 기일, 공소 제기된 법원, 판결주문, 선고일자, 재판의 확정 및 상소 여부 등만 알아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법정에 가지 않고서는 어떤 증인이 나와 어떤 내용으로 증언하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가해자는 변호인을 선임하건 하지 않건 재판 기록을 아무런 제한 없이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는 지난해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재판 기록을 열람하거나 복사할 권리가 없었다. 개정된 법에서도 두들겨 맞아 중상을 입은 피해자마저 일정한 경우에만, 그것도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야 조건부로 기록을 읽어 보거나 복사할 수 있다.

수사기관의 처분에 불복하여 재정신청의 사건심리 중에는 관련 서류 및 증거물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없다. 피해자가 형사배상명령을 신청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여도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야 겨우 사건기록을 읽어볼 수 있을 뿐(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복사할 권리는 아예 없다.

배상명령신청이 법관에게 부담을 주는 제도가 되었는지 필자가 선임한 사건에서는 배상명령신청인의 의견을 듣거나 신청대리인인 변호사를 확인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죄를 지은 가해자는 일정한 경우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공짜로 변호사를 부려먹을 수도 있지만, 피해자는 그런 권리마저 없고 제 돈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여도 그 변호사의 역할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두들겨 맞은 사람은 손발이 묶여 있고, 팬 사람이 더 많은 권리를 행사한다면 이상한 제도 아닌가? 군사정권하에서 억울하게 형을 받은 사람이 많아서인가? 그동안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한 인권보호에만 치중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억울하다며 가해자를 어떻게든 구속시켜 달라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으면 능력 없는(?) 변호사, 참으로 난감한 경우가 많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직도 맞은 사람은 ‘놈’이고 두들겨 팬 사람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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