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열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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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20면

광우병 논란의 여파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진 요즘입니다. 조류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이 식탁에 녹색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기농 먹거리의 매상이 부쩍 늘고 채식 뷔페도 성업 중입니다.
축산농·고깃집은 촛불에 데였지만 친환경 농업인과 곡물·채소업자는 볕을 훈훈하게 쬐고 있는 셈이지요. 이를 계기로 취재팀은 채식 열풍과 그 허실을 3주간 탐사했습니다.

스페셜 리포트의 ‘밥상’을 차리면서 세 권의 번역 단행본을 훑어봤습니다. 우선 영장류 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제인 구달이 쓴 '희망의 밥상'. 저자는 지구의 자연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 인류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장형 축산과 유전자 변형작물 등을 없애고 자연친화적인 문명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음은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저자는 세계 최대의 아이스크림 회사인 ‘배스킨 로빈스’의 상속자이었으면서도 유제품을 포함한 육식 생활을 비판하며 거액의 유산을 뿌리친 기인(奇人)입니다. 그는 육식의 악영향을 과학적으로 소개하면서 인류가 잘 살기 위해 음식 혁명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마지막은 유명 모델출신의 로리 프리드먼과 킴 바누인이 함께 쓴 '스키니 비치(깡마른 여자)'아름답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생활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세 책의 저자들은 각기 다른 차원에서 육식을 부정하고 채식을 옹호합니다.

채식의 이유만큼이나 유형도 여럿입니다. 일반 스님들처럼 완벽한 채식주의자도 있지만 가급적 피하긴 해도 비정기적으로 육식을 하는 준(準)채식인도 많습니다. 채식주의자 중에도 유제품·계란·생선 섭취 여부에 따라 여러 유형이 존재합니다. 한국은 전 국민의 2%, 미국 5%, 서유럽 10% 안팎이 채식주의자로 추정됩니다.

대만·인도처럼 특정 종교가 지배적인 곳을 빼고 대체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가일수록 그 비율이 높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모두 설렁탕을 시킬 때 산채비빔밥을 주문한 사람에게 면박을 주지 않는 식의 문화 다양성이 존재해야 채식주의자가 기를 펼 수 있을 겁니다.

스페셜 리포트에는 중앙일보사 인턴기자이자 채식주의자인 외국 여성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그의 주장이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채식문화의 잠재력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 김치·비빔밥·쌈밥 같은 훌륭한 조리문화와 육식을 멀리하는 불교문화가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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