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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대책, 정부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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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원자재.유가.원화의 3고(高) 현상이 우리 경제의 3대 현안이라면 겨울가뭄.봄강풍.선거의 3고(苦)는 강원도의 현안이다.

잔치가 돼야 할 선거가 왜 고통일까마는 매년 선거철만 되면 대형 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선 1998년 4대 지방선거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초대형 산불이 났다. 다시 2004년 총선을 맞으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나 할까.

지난해 12월부터 극심한 겨울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동해안 지역은 백두대간이 가로막힌 지형적 특성상 항상 봄철이면 강풍이 분다. 3월 10일엔 이 지역에 폭풍경보가 발효된 가운데 강릉에 최대 순간풍속 초속 24m, 대관령에 초속 30.5m의 강풍이 불었다.

이미 3월 10일부터 16일 사이에 5건의 산불이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했다. 96년.98년.2000년의 대형화재에다 2002년.2003년에는 태풍 루사와 매미 피해까지 겹친 지역이다 보니 주민들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다. 더욱이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어서 화재 발생에 속수무책이다.

강원도의 역대 산불 통계를 보면 4월에 연중 절반 가까이 발생했으며 3월까지 합칠 경우 약 70%에 이른다.

최근 가장 큰 피해를 준 2000년 동해안 산불은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1주일간 2만3138ha의 산림을 불태웠다. 그 외에도 2명의 사망자, 299가구 850명의 이재민, 총 1072억원의 직접적 재산피해를 냈다. 90~99년 10년간 강원도에서 발생했던 367건의 산불이 5830ha를 태웠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큰 피해인지 짐작하게 한다.

2000년의 큰 산불 이후 강원도는 산불예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99년에 15억원에 불과하던 산불방지 예산을 2003년엔 148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그 외에도 77대의 무인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99년 670명이던 유급감시원을 2516명으로 대폭 확충했다. 산불 진화체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해 양양군에서는 96년 이후 16명의 산불 전문진화대와 30명의 특별진화대로 초동 진화체계를 갖췄다.

그러나 이렇게 지자체들이 최선을 다한다 해도 동해안 산불에는 한계가 있다. 건조한 바람이 부는 푄(높새)현상으로 비가 와도 산들이 금방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양강지풍(襄江之風:양양과 강릉 사이의 바람)'으로 유명한 초속 15m 이상의 봄철 강풍은 산불진화의 1등 공신인 러시아제 산림청 헬기조차 무력하게 한다.

강원도 산에는 또 인화력이 강한 소나무가 많고 가지치기로 나뭇가지들이 많이 쌓여 있다. 군부대 밀집지역의 폐타이어 벙커 등은 아예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96년 4월 고성군의 화재는 군 사격장에서의 불꽃이 원인이었다. 정선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30대가 홧김에 산불을 낸 경우도 있다.

산림은 많은 공익적 가치를 창출한다. 산림 생산물과 산소 생산, 수원 함양, 생물종 보존 등 무수한 가치를 낳는다. 이를 화폐로 환산하면 전국 산림이 연간 50조원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한다.

이 중 13조원이 강원도의 산림이 맡고 있다. 이를 보면 백두대간을 지키는 일이 강원도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강원도 주민들은 백두대간에 환경보호의 규제를 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산불을 '예방'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과학적인 산불예방 시스템 도입과 첨단 고가장비 구입 등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래서 봄철이면 산불로 인해 파김치가 되는 강원도 공무원들이 지역주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염돈민 강원발전연구원 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