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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4강전 비책은 “엔조이 사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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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세계 각국에서 온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이어 이번 유로 2008에서도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바젤 AFP=연합뉴스]

이번에는 즐기란다.

유로 2008 준결승전은 러시아 축구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경기다. 감독과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지원스태프까지 긴장할 법하다. 그런데 결전을 이틀 앞둔 24일(한국시간) 러시아 대표팀의 훈련장인 스위스 바젤 랑크호프 경기장에서는 휴일 오후 같은 나른함이 흘러넘쳤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러시아 선수들은 여름철 베짱이처럼 여유만만했다.

훈련장에는 세 개의 족구 네트가 설치됐다. 선수들은 가볍게 몸을 푼 뒤 족구를 즐겼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족구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체력과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히딩크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훈련법이다. 히딩크는 한국팀을 지도할 때도 “족구(Foot Volleyball)는 릴랙스 앤드 리커버리(Relax and Recovery)에 좋다”며 종종 활용했다.

족구가 끝나자 6-6 미니 게임이 이어졌다. 22일 네덜란드전에 선발 출전했던 선수들은 열외였다. 이들은 아무렇게나 훈련장에 털썩 주저앉아 동료의 훈련 장면을 보며 수다를 떨었다. 러시아 선수들은 23일에도 하루종일 쉬었다. 아르샤빈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은 이틀간 공 한 번 만져보지 않은 셈이다. “휴식이 최고의 훈련”이라는 게 히딩크 감독의 판단이다.

어찌 보면 느슨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선수들을 풀어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매주 긴장 속에서 자국 리그와 챔피언스를 치른 스페인 선수들과 달리 러시아 선수들은 큰 경기를 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준결승같이 부담이 많이 가는 경기에서 압박감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할까 봐 쉬고 즐기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즐길 때 가장 좋은 성과가 나는 법”이라고 히딩크는 덧붙였다.

◇“한국·러시아 가르치는 보람”=히딩크 감독은 스스로도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을 먼저 숙소로 돌려보낸 히딩크 감독은 약 1시간15분 동안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세계를 떠돈 덕분에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를 구사하는 히딩크 감독은 질문한 기자의 말과 같은 언어로 대답하는 ‘립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2002년 한국과 2008년 러시아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히딩크는 “두 팀 모두 가르칠 만하다(coachable)”고 대답했다. 한국과 러시아 모두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잘 따를 뿐만 아니라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하는 팀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한국에 비해 러시아에서는 함께 훈련할 시간이 길지 않았다”며 “러시아와 함께할 때 자신감이 100%였다면 한국과 함께할 때는 110%나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고 부연했다.

바젤(스위스)=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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