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15 총선 예측과 향후 시나리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송호근 서울대 교수 사회학

4.15총선에서 각 당은 과연 몇 석을 차지할 수 있을까. 정당명부제가 처음 실시되는 이번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란 매우 힘들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별 일 없는 한 열린우리당이 판을 휩쓸 것도 같다. 아무튼 탄핵정국의 약화, 노풍(老風)과 박풍(朴風), 또 다른 변수의 돌출 등이 남은 일주일의 판세를 결정할 것이다.

총선 예측도를 높이려면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유권자 3천5백만, 투표율 70% 정도로 하고, 각 요인들의 복합 작용을 계산하려면 수퍼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보다 단순한 방정식으로 점쳐보려 한다. 그것은 F(각당 총의석수)=f(지역구)+f(비례대표)인데, 지역구에서는 현재 '당 지지율'이 60% 정도, '후보 지명도'가 40% 정도 좌우하고, 비례대표는 지역구 점유율로 의석수가 배분된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이 틀릴 수도 있다. 아무튼 지면 제약상 상세한 수식과 계산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제시하면 이렇다. 열린우리당 131석, 한나라당 108석, 민주당 38석, 민노당 12석, 자민련(통합21.무소속 포함) 10석. 당 지지율이 70% 반영된다고 가정하면 약간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당 지지율이 60~70% 반영된다고 할 때 의석수는 열린우리당 130~140석, 한나라당 103~108석, 민주당 33~38석, 민노당 10석, 자민련(통합21.무소속 포함) 10석으로 계산된다.

*** 열린우리 정국 주도권 쥐고

이 결과로만 보면 17대 국회는 일종의 대치정국일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지만 정국 주도권을 얻고, 한나라당은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고, 민주당은 소규모 지역정당으로 위축된다. 민주당이 야당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 여야는 누구도 과반수가 안돼 미묘하고 지리한 세력균형이 형성될 전망이다. 민노당의 출현과 군소 자민련의 생존은 이런 여야대립의 균형을 깨뜨리는 데에 의미심장한 역할을 할 것이다. 시민들은 이번 총선이 한국정치의 전환점이 되기를 고대한다. 이른바 인물 교체, 즉 물갈이만으로는 정치변혁이 어렵다. 문제는 정당조직의 원리가 바뀌었는가에 있다. 이번 총선에서 참신한 인물이 대거 나섰다는 것은 희망적이지만, 정당의 조직원리가 바뀌지 않는 한 정치발전에 반드시 낙관적이지는 않다. 우선 새로운 인물들이 국회 진입에 성공해도, 그들이 몸담던 조직.계층.단체의 이익을 대변할 것인가는 불명확하다. 둘째, 개별동원과 명망가 중심의 영입은 각당의 비례대표 후보선정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비례대표 선정에는 활동업적과 저명도가 가장 중요한 잣대였다. 그런데 교수를 영입하면 국회의 담론 수준은 높아져도 학생들이 그 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셋째, 사회 각 부문.주요 인사의 고른 등용은 의외로 정체성의 문제를 일으킨다. 문성근과 명계남이 볼멘소리를 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른바 '포괄 정당'의 딜레마, 즉 정체성의 분열에 따른 갈등이 재현될 조짐이 커진다. 여기에 각 정당들의 과두제적 지도체제가 도사리고 있다.

*** 한나라 개헌 저지선 확보할 듯

그러나 이번 선거가 한국의 정치발전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역정당이 생존할 여지가 좁혀지고, 거대 정당의 독주 가능성도 작다. 정당명부제는 거대 정당의 탄생을 어렵게 하고 군소 정당을 활성화한다. 여성정치가 선보일 예정이고, 어쨌거나 잘만 한다면 각 계층의 이해가 고루 대변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제에 내각제 정치형태가 접목될 수도 있다.

향후 정국의 태풍의 눈은 무엇보다 민노당과 민주당의 존재다. 우선 민노당의 진출은 노사관계 안정에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진보성향이 보수집단의 성질을 건드리겠지만, 장기적으로 봐서 한국정치에 극단성 완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민노당의 존재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중도에 가까운 우(右)에 포진할 것이고,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중첩되면서 약간 더 중도 우(右)쪽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의석수가 많은 정당일수록 중앙에 위치할 개연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각 정당은 정책개발로 승부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정당의 생태계가 바뀐 상황에서 민주당은 더 이상 지역정체성에 집착할 수 없다. 그런데 변신의 공간은 매우 비좁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한나라당과 선택적으로 협조하면서 캐스팅 보터의 입지를 넓히는 방법. 그러나 이것은 한.민협력의 악몽이 살아 있는 한 어려울 것이고, 또한 민주당의 자존심과 어울리지 않는다. 둘째, 우여곡절 끝에 열린우리당과 살림을 합치는 방법이다. 이러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정당구도가 완전히 바뀌고 거대 여당의 독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의 캐릭터에 힘이 붙어 개혁 칼날이 정치판뿐만 아니라 천지에 휘몰아칠 것이다. 이래저래 총선 이후 전개될 정국의 변화가 궁금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이 글에 실린 분석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것이며, 선거법에는 위반되지 않는다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았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