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폭설.셧다운에도 혼란없는 미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 맨해튼도 50년만의 폭설에는 두손 바짝들었다.1946년의 기록에는 다소 못미친다 해도 그동안 뉴욕이비대해진 것을 감안하면 눈 피해는 사상 최대임에 틀림없다.
뉴욕을 포함,미 동북부에서 지금까지 100명이 숨지고 170억달러(13조2,600억원)의 재산피해가 났다.이미 온 눈을 치우는 비용만 1,200만달러(93억여원) 규모라는 것이다.
눈이 계속될 경우 뉴욕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면할 수 없다.눈에 묻혀있는 뉴욕시 골목길의 수많은 자동차들은 이번 겨울 내내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을지 모른다.먹이가 눈에 덮여 새들이 굶어 죽듯이 가뜩이나 재정난에 허덕이는 뉴 욕이 이번 폭설로 낭패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아무 데서도 혼란이 일고 있다는 느낌을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세계의 심장부가 갑자기 마비현상을 일으켰는데도 사방이 너무도 조용하고,아무런 혼란을 느낄 수 없다는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눈이 얼마나 오건 간에 여기에 대비하는 각자의 할일이 이미 정해져 있고,사람들은 여기에 따라 움직이면그만이다.제도가 그렇게 짜여져 있는 것이다.
캄캄한 밤시간에 소방대원 두명이 집으로 찾아와 깜짝 놀랐는데눈에 묻혀 있는 우리집 앞 소화전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았다.눈이 녹을 때까지는 소화전 자리를 일일이 파헤칠 수 없으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표지를 만들어 놓자는 것이다.
그들은 동네골목을 돌면서 눈 속에 파묻힌 소화전 자리 확인작업을 그런 식으로 해 나갔다.눈이 많이 올 경우 그들이 해야할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그들은 모두가 동네에 사는 자원봉사 소방대원들이었다.
또 균형예산안 파동으로 두차례에 걸쳐 근 한달간 연방정부 업무의 부분적 기능마비 상태가 야기돼 우리나라 같았으면 필경 법석이 났을 터이지만 미국에선 대범하게 넘어갔다.
역시 제도가 움직이는 사회의 진면목이라고나 할까.부러운 일이아닐 수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