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의 손’ 카시야스 ‘무적함대’ 구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이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순간, 스페인 선수들(왼쪽부터 카를로스 마르체나, 다비드 비야, 카를레스 푸욜, 세르히오 라모스, 산티 카소를라)이 환호하며 달려나가고 있다. [빈 AP=연합뉴스]

스페인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27)를 자국팬은 ‘산 이케르(San Iker)’라 부른다(San은 스페인어로 성인의 의미). 기적과 같은 선방으로 번번이 팀을 구해 내는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23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빈 에른스트 하펠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2008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도 그는 팀을 지켜냈다.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두 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이탈리아 골키퍼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야신상(최우수 골키퍼)과 우승을 휩쓴 잔루이지 부폰이었다. 부폰은 1m91㎝의 거구이면서도 총알처럼 빠른 괴물이다. 하지만 이날은 ‘산 이케르’가 한 수 위였다. 그는 이탈리아 다니엘레 데로시와 안토니오 디나탈레의 슈팅을 막아내며 4-2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스페인의 이날 승리는 메이저대회 징크스를 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은 이탈리아·독일·프랑스 못지않은 ‘축구 강국’이지만 유로 1984 준우승 이후 한 번도 4강에 올라보지 못했다. 유로 우승은 44년 전인 64년에 한 차례 경험했다.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우승은 고사하고 4강도 50년에 올라봤다. 그로 인해 스페인 축구는 “고질적인 지역감정 때문에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열심히 안 뛴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카시야스는 2002년 6월 22일 한국과의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 때도 스페인 골문을 지켰다. 다섯 번째 키커 홍명보의 환한 미소 뒤에는 그라운드에 엎드려 좌절한 카시야스가 있었다. 카시야스는 이탈리아전 직후 “승부차기는 로또나 마찬가지여서 잘 막은 적도 있지만 2002년 월드컵 때처럼 안 좋은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카시야스는 단 한 골도 막지 못했다.

◇조별리그에 이어 재회=유로2008 4강이 모두 가려졌다. 스페인은 27일 빈에서 러시아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러시아로서는 ‘리턴매치’다. 러시아는 11일 조별리그에서 스페인 다비드 비야에게 해트트릭을 허용, 1-4로 졌다. 점수와 내용 모두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조별리그 스페인전 때 출전정지로 빠졌던 안드레이 아르샤빈이 이번에는 뛸 수 있다. 러시아는 그가 가세한 뒤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그는 스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고 직접 득점까지 터뜨리는 축구 스타로 도약했다. 러시아는 팀 전체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조별리그 스페인전에서 ‘촌닭’ 같았던 러시아 젊은 선수들은 그리스·스웨덴·네덜란드 등을 차례로 거꾸러뜨리며 사기충천이다. 다만 중앙수비수 데니스 콜로딘과 미드필더 드미트리 토르빈스키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는 게 약점이다. 루이스 아라고네스 스페인 감독은 “1차전 결과를 잊고 결승 진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거스 히딩크 러시아 감독은 “지금은 휴식이 중요하다”며 또 한 번의 체력전을 예고했다. 독일과 터키의 또 다른 준결승전은 26일 바젤에서 열린다.

빈(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