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민족의 정서 웅장하게 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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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질곡의 세월에 가려져있던 명성황후의 사무친 한이 가슴 뭉클한감동으로 되살아났다.
지난해 12월30일부터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윤호진 연출)는 그 규모와 극적 완성도면에서 국내 뮤지컬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작품으로 기록될 것 같다.
『명성황후』는 4년간의 준비기간에 12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대형 무대지만 비극적 사실(事實)을 다룬다는 점에서 사극의 진부함과 무거움이 다소 우려됐었다.그러나 다양한 볼거리로 채워진무대는 음향.노래대사등이 지닌 몇가지 문제점을 빼곤 소재의 부담스러움을 충격과 감동으로 대치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했다.
특히 무대장치(박동우)와 의상(김현숙)은 이들이 뮤지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줄 만큼 인상적이었다.
대원군이 비운의 명성황후를 추억하는 서막중 무대 전면에 비치는 앙상한 나뭇가지 영상이나 경복궁 무대 위에서 아래로 드리운푸른 버드나무 가지는 늘어지고 휘어버린 회한의 민족사를 암시하는듯 처연하다.단아한 단청무늬를 두르고 무대위에 드리운 붉은 띠와 황금색 봉황무늬의 붉은 장막은 옷고름과 댕기를 연상시키는한편 조선 황실의 높은 품격을 상징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시해사건이 일어나기전 빠른 속도로 몰려오는 먹구름등 영상기법을 활용한 것도 적절해 보였다.
현대 감각을 살린 음악은 작품의 무거움을 덜었다.윤석화.김민수등 뮤지컬 전문배우와 윤치호.권홍준등 정통 성악가,어린이 합창단등이 함께 펼쳐보인 무대는 TV 프로그램 『열린 음악회』처럼 세대를 넘어선 오묘한 조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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