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2> US오픈과 골프 마케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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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25면

17일 타이거 우즈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US오픈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승부로 ‘역대 최고의 골프 대회’라는 찬사를 받았다. 무릎 부상을 딛고 출전한 주인공이 연장, 재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타 차 승리를 거두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에 가까웠다.

US오픈이 열린 토리 파인스 골프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가 운영하는 퍼블릭 코스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입장료는 겨우 36달러(18홀 기준). 샌디에이고 주민에게는 27달러로 깎아 준다. 우리 돈으로 2만7000~3만6000원만 내면 최고 수준의 코스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 반도의 페블비치 골프장은 같은 퍼블릭이지만 그린피가 500달러 가까이 된다. 특히 태평양을 끼고 있는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는 그린피가 무척 비싼데도 라운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세계 전역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페블비치의 명성을 듣고 몰려들기 때문이다.

‘토리 파인스’와 ‘페블 비치’. 두 곳의 퍼블릭 골프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은가 묻는 건 우문이다. ‘캘리포니아 골프’가 주목하는 건 골프 마케팅의 위력이다.
US오픈을 앞두고 샌디에이고시 당국은 총력을 기울여 대회를 준비했다. 350만 달러(약 35억원)를 들여 코스를 뜯어고쳤고, ‘미국에서 가장 멋진 도시(America’s finest city)’라는 문구를 도시 곳곳에 내걸고 시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대회 기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호텔 방은 동이 났고, 레스토랑과 와인 바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그 결과 이 지역 경제가 1억 달러 이상의 효과를 봤다는 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이다. 2003년 이 도시에서 열린 수퍼보울이 단발성 이벤트였던 데 비해 US오픈은 일주일 내내 열린 골프 팬들의 축제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페블비치의 마케팅 전략도 살펴보자.

페블비치 리조트 측은 링크스 코스의 인기가 높다 보니 호텔에서 꼭 이틀을 묵는 조건을 붙여 부킹해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다 보니 링크스 코스에서 골프를 즐기려면 숙박료(2박) 포함, 1인당 1900달러(약 190만원)를 내야 한다. 그런데도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부킹하기가 만만찮다. 어림잡아도 이들이 먹고 마시면서 쓰고 가는 비용은 1인당 수백만원을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한민국은 왜 이게 안 될까. 기후 탓도 있다. 그러나 국내엔 페블비치나 토리 파인스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게 더 큰 걸림돌이다. 동해나 서해안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는 골프 코스를 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설계 기술이 없냐고. 천만의 말씀. 현행 법률(연안관리법)에 따르면 바닷가에 골프장을 지을 때는 해안에서 최소한 300m는 떨어져야 한다.

골프장 건설을 위해 환경보호쯤은 눈감아 버리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자연을 그대로 보전하면서도 골프장을 건설하는 길을 찾아보자는 말이다. 골프 설계가 송호씨는 말한다. “버려진 바닷가 땅을 활용하면 환경을 보전하면서도 아름다운 코스를 얼마든지 건설할 수 있다. 서해안에 토리 파인스나 페블비치에 맞먹는 멋진 코스가 생긴다고 상상해 보자. 가까운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 경제는 살아난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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