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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아름다운 가게' 새 공동대표 윤팔병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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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표로서 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인터뷰를 한다고 그래… 허허 참."

인사차 내미는 손에 굳은 살이 가득 잡혔다. 버려진 물건을 뒤지며 50년을 살아온 흔적이다. 윤팔병(64) 넝마주이공동체 고문. 전북 변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안학교를 운영 중인 윤구병(61)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의 형이다.

그가 지난 3월 말 '아름다운 가게' 새 공동대표로 선임됐다. 사회 저명인사가 아닌 철저한 '야인(野人)출신'이 대표가 되기는 시민단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수식하는 어떤 말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냥 넝마주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의 삶은 굴곡의 한국역사 그 자체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일제 시대 서울에서 포목상을 크게 하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살던 아홉 형제의 삶은 한국전쟁 이후 갈가리 찢겨졌다. 형 여섯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되거나 실종됐다.

일곱째 형은 고문 후유증으로 자살했다. 윤씨도 초등학교 때 집을 나와 구두닦이. 뚜쟁이 등 '거리의 자식'으로 살아왔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를 살려놓은 게 넝마주이들이었다.

한동안 헌책방을 운영하다 1984년 넝마공동체를 만들고 서울 대치동 영동5교 다리 밑(300여평)과 포이동 시유지(1000여평)에서 재활용품을 팔아 부인과 두 아들을 먹여살렸다.

그는 철저한 재활용주의자다. 먹는 것만 빼고는 새로 사는 게 없다. 속옷까지도 남이 입던 것이다. 부인에게도 속옷을 사주지 않았다.

"그 마음, 아시겠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각시에게 주워온 옷을 던져주는 마음을. 그래도 군소리없이 받아드는 집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사회적 냉대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나눔의 삶을 실천해왔다. 허리가 부러져라 모은 고철을 팔아 만든 돈과 골라낸 옷 중 일부를 외국인 노동자 돕기용으로, 또 북한 주민 돕기용으로 내놓았다. 그런 그를 박원순 '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가 찾아갔다.

"공동대표를 맡아달라는 말을 듣고 엄청 기뻤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이제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는 자신에게 쓸모 없는 물건을 기증하고 이를 되팔아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가게'의 취지에 100% 공감한다고 말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요즈음,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간극을 메우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라는 얘기다.

" '있는 사람'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살던 적이 있었소. 하지만 증오 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디다. 동생이 강단에서 내려와 똥지게를 지고 사는 모습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도 그 무렵이었지. 증오보다 더 필요한 것은 희생과 화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소외 계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더 많은 사람의 동참을 얻어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직 몸은 쓸 만 한께 몸으로 때워야제. 양아치 들여놨다는 소리는 들으면 안 되것고, 떠날 때 심부름 자알 했다는 얘기나 들으면 좋고."

글=정형모,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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