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큰손' 장기투자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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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 상장.등록된 국내 기업의 40%(시가총액 기준) 이상을 외국인 투자자가 소유하고 있다. 국내 증시의 간판주인 삼성전자와 POSCO의 외국인 지분은 오래 전에 50%를 넘어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금도 한국 기업에 대한 '욕심'을 접지 않고 '바이 코리아(Buy-Korea)'행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자본만 왔다갔다 하는 주식투자의 성격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의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그나마 5% 이상 지분을 가진 대주주는 감독당국에 신고하게 돼 있어 어느 정도 실체 파악이 가능하다.

중앙일보는 국내 처음으로 외국인 '큰손'들의 보유 종목을 총망라한 '외국인 투자지도'를 만들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어느 나라 투자자들이 어떤 종목에 투자하고 있고, 그들이 어떤 투자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신고 대상은 극히 일부=올해만 8조원어치 이상 국내 주식을 순매수한 외국인의 폭발적인 '바이 코리아'행진에 힘입어 지난해 말 40%였던 외국인의 거래소 시가총액 비중은 43.5%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외국인 비중 50% 시대도 멀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현재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5% 이상 주식 보유자(외국인)는 거래소 92명, 코스닥 109명이다. 이들 5% 이상 보유자는 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에서 지난달 26일 주가 기준으로 모두 23조6711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거래소와 코스닥의 전체 시가총액 416조8110억원 가운데 5.6%에 해당한다. 5% 보고 규정에 따라 실체를 드러낸 큰손들보다 5% 미만의 지분을 취득해 신고의무가 없는 정체불명의 외국인 투자자가 훨씬 많다는 얘기다. 2월 말 현재 국내에 투자자로 등록하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1만5568명이고, 이중 개인은 5287명이며 기관은 1만281명이다.

◇대부분 장기투자자=외국인 큰손들은 장기투자 펀드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주요 종목을 대량으로 사들이며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투자의 잣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들은 국내 기관투자가나 단기차익을 노리는 '핫머니'와 달리 성장 가능성이 큰 우량주를 2~3년에 걸쳐 꾸준히 사들여 오랫동안 보유하는 장기 가치투자에 주력한다.

외국인 큰손들의 투자자금 가운데 90%는 미국.싱가포르.영국.독일 등 금융 선진국에서 들어왔다. 단기차익을 노리는 '핫머니'의 진원지인 버뮤다.버진 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지역(택스 헤이븐)에서 흘러든 자금의 비중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자금의 투자성격은 유입 지역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면서 "지역별로 보면 양질의 대형 펀드들이 국내 증시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기차익을 챙기고 손을 빼거나 경영권을 뒤흔들어 주가를 불안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GMO이머징마켓펀드는 지난해 10월 말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2만5900원에 대량으로 사들인 뒤 11월 초 8만7000원대에 주식을 매각해 불과 열흘 만에 70억원 가까운 차익을 실현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지난 2일 4만2150원으로 마감했다.

◇주목되는 캐피털그룹=가장 다양하고 많은 종목을 보유한 외국인은 미국계 캐피털그룹이다. 캐피털그룹 인터내셔널(CGII)과 캐피털리서치 앤드 매니지먼트(CRMC) 등 양대 투자펀드를 내세워 삼성전자.현대차 등 대형 우량주뿐 아니라 풀무원.농심.LG애드 등 중소형 내수주까지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캐피털그룹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등록사는 CGII와 CRMC가 16개사씩 모두 32개사에 달한다. 이들의 보유 평가액만 9조5368억원에 달해 외국계 큰손이 지분 매입을 보고한 주식의 40.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시장(거래소+코스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28%에 이른다.

캐피털그룹이 거래소의 '큰손'이라면 영국계 애틀랜티스코리아스몰러컴퍼니는 코스닥의 '왕발'이다. 정보기술(IT)주에서부터 교육.화장품 업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코스닥 종목을 사들였다. 이 회사는 태산엘시디나 우리조명.세진티에스 등 다른 외국인의 관심 밖에 있는 종목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김동호.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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