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성호 선장 金富坤씨 7개월 북한억류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해 5월30일 북한 경비정에 나포돼 북한에서 7개월동안 억류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우성호 선장 김부곤(金富坤.37)씨는1일 오후 전북군산시의 한 음식점에서 본사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억류 당시의 생활에 대해 밝혔다.金선장은 이 날 본사기자에게 『저의 무사귀환을 빌어준 국민들에게 고맙다』는 새해인사와 함께 『하루빨리 그날의 악몽을 잊고 싶으며 앞으로 다시는 배를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金선장의 북한억류생활 수기를 요약해소개한다.
[편집자註] 지난해 5월30일 낮12시쯤 한반도 가까이 서해의 이름모를 조그마한 섬 옆을 지나는 순간 『멈춰라』하는 스피커음이 들려왔다.
중국산둥반도에서 오전5시에 출발,1 앞도 안보이는 안개속을 뚫고 항해한지 7시간여만이었다.
정선 경고음이 들리는 순간 「북한해상에 들어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뱃머리를 돌렸다.그러나 달아나려는 순간 『발포하겠다』는 확성기음과 함께 총성이 울렸다.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항해사 신흥광(42)씨가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 졌다.뒤이어갑판장 심재경(35)씨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나도 오른쪽 옆구리와 허벅지 등이 뜨끔함을 느끼며 쓰러졌다.
조타실에서 일어난 불이 순식간에 배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결국 북한경비정에 붙잡혀 상륙하기전 해상에서 6일간을보냈다.이때 발바닥에서 소주병 뚜껑만한 파편을 빼내는등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여름이라서 살이 썩어 들어갔다.나중에 남포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의약품이 안 좋아선지 한달이 넘어서야완쾌됐다.
우리들은 6월5일 오후 남포항에 도착한 뒤 「남포항여관」에 수용됐다.생존한 우리 선원 6명은 방 한칸에 1명씩 격리된 채억류생활을 시작했다.
여관방은 4~5평 정도로 낡은 침대 2개,옷장,17인치정도의TV,욕실등이 갖춰져 우리나라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깨끗했다.
5일이 지난 6월11일부터 북한의 조사원들이 방으로 와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조사내용은 처음에는 침범경위.신상명세서 등 일반적인 것들이었다.나는 항해미숙으로 인해 침범했다고 답변했다. 나중에 그들은 뜻밖에도 남조선의 정치상황이 어떠냐고 물었다.나는 무척 당황했다.나는『우리는 배를 타고 바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잘모른다』고 말했다.
조사원은 1~2명이 한조를 이뤘으며 얼굴은 핏기가 없고 깡마른 체격이었다.말과 행동이 매우 신경질적으로 우리들에 대한 조사를 마지못해 하는 인상이었다.여관에 머무르는 3개월동안 조사는 2~5일에 한번씩 계속됐다.
방으로 날라다 주는 식사는 흰쌀밥에 김치.갈치조림.불고기 등반찬이 7~8가지나 됐다.
여관생활을 하면서 커튼을 제치고 밖을 자주 구경했다.거리에는사람들의 통행이 뜸했다.어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없어 보였으며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보였다.
여관에서의 취침시간은 자유로웠다.나는 보통 오후 10시에 잠을 자 오전 7시에 일어났다.
동료들과 격리생활을 해 신변에 대해 전혀 몰랐다.다만 옆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보아 매우 건강하고 나와 같이 체념한듯 했다.조사원들에게 동료들에 관해 물었으나 건강하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여관에서는 TV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나는 북한에대한 호기심이 있어 TV를 자주 보았다.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이북한을 홍보하거나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들 뿐이었다.
여관생활을 한지 2개월이 지난 7월말께 이일용(58)선원이 심한 가래와 발이 부어서 숨졌다.그 사실은 이틀이 지난뒤 조사원이 말해줘 알았다.9월10일께 조사원이 들어와 소지품을 챙기라 했다.우리는 탄광이나 유배지로 끌려가는 줄 알 고 「이제 모든게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 우리를 원산휴양소로 데려가더니 평화통일위원회로 넘겼다.우리는 휴양소에서 2명당 방을 한칸씩 배정받았다.그곳도 남포여관과 모든 시설이 비슷했으며 외국인 숙소로 제공되는 곳으로 생각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남한으로 돌아올 때까지 북한이 자랑하는 묘향산.금강산.만경대 등을 관광했다.
미니버스에 타고 관광할때에도 커튼을 제치고 거리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많은 편이었으나 차량 통행은 뜸했다.
원산휴양소에서 우리나라 전직대통령 2명이 구속된 사실을 알았다.북한 TV뉴스 시간마다 『남조선의 전직 대통령들이 재직기간동안 인민의 피를 빨아 엄청난 재산을 축재해 인민들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생활을 한지 3개월이 넘은 12월22일 오전 안내원이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해 「이제 진짜 우리는 죽었구나」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태운 차를 평양 고려호텔 앞에 세우고 방을 배정해주더니 『오늘밤 8시뉴스를 보라』고 한 뒤 가버렸다. 이날밤 뉴스에는 우리들이 26일 오후4시 판문점을 통해 한국으로 귀환된다는 내용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이제 살았다』며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돌아오는 날 미니버스 속에서 안내원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그러자 한 동료가 『당신은 부모형제를 만나러 가는데 기쁘지 않겠냐』고 답변했다.
이제 북에서의 억류생활을 하루빨리 잊고 싶을 뿐이다.앞으로 다시는 배를 타지 않을 생각이다.
[정리.군산=서형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