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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직전에 중·일 가로채기 총력전으로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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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월까지만 해도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선 “코로코로 승전보를 울릴 날이 멀지 않았다”고 들떠 있었다. 지난해 10월 남미 볼리비아 측과 코로코로 동(銅) 광산 공동개발을 위한 투자의향서(ILO)에 서명한 데 이어 연말엔 이 광산을 노리고 뒤늦게 입질을 한 중국을 따돌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 달라졌다. 본계약이 자꾸 연기되더니 4월엔 조인을 위해 볼리비아까지 날아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사인 직전에 한국 측 사업 지분을 50%에서 45%로 줄이라는 통보를 받고 따졌으나 허사였다. 마침내 18일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절반이 안 되는 지분으로 공동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 광진공 관계자는 “자원의 무기화, 자원전쟁 시대에 해외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여정인지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틈새를 찾아서=코로코로를 발견한 건 한국의 해외자원개발사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됐다. 자원개발 시장은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지 메이저 기업의 놀이터로 불린다. 자기들끼리 정보를 나누고 때론 경쟁하는 ‘클럽 비즈니스’다. 걸음마 수준의 한국이 가능성이 큰 광산을 손수 찾아내 메이저를 끼지 않고도 개발권을 따냈다는 점이 이례적이었다. 우리나라가 참여한 대부분의 해외개발은 믿을 만한 외국 업체를 끼고 지분을 투자하는 형식이었다.

코로코로는 ‘틈새를 공략한다’ 전략의 첫 수확물이었다. 국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메이저 광산업체들의 손길이 덜 미치는 곳을 주목한 결과다. 국가가 광산 개발을 주도하고 법과 제도가 미비해 이번처럼 중간에 계약 내용이 확 바뀌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광산 개발 관련 자본·기술·정보가 모두 떨어지면서 뒤늦게 자원확보 경쟁에 뛰어든 한국으로선 현실성 있는 대안이었다. 광진공은 조사분석팀의 김홍식 차장을 지난해 4월 남미에 파견했다. 그가 홀로 남미를 훑다가 발견한 곳이 볼리비아였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지만 광산 국영화 등으로 투자장벽이 높아 서구 메이저 업체들이 미처 손을 대지 않았던 나라였다. 규제와 난관을 뚫고 ILO까지 체결하고 돌아왔다. 문제는 다른 나라의 견제. 한국의 볼리비아 진출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과 일본 업체들이 달려들어 현지 당국의 콧대를 높여 놓았다.

◇‘코로코로 전투’=지난해 말 중국의 국영 S사가 돈을 싸들고 볼리비아로 급파돼 현지 정부 관계자와 접촉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거래 상대방인 현지 국영회사 코미볼 측에 알아보니 중국 측의 초청으로 12월에 볼리비아 광업부 장관과 코미볼 사장이 중국에 간다는 내용. 광진공은 곧바로 이길수 본부장을 ‘야전사령관’으로 삼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 본부장은 코미볼 측에 “중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한국에 꼭 들러 달라”고 청했다.

그는 당시 외교통상부·산업자원부 등을 쫓아다니며 볼리비아 ‘귀빈’들을 감동시킬 작전에 들어갔다. 외교부로부터 공항 의전실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산자부 차관 등과 만나는 자리도 주선했다. 손님들을 비행기 문 앞에서 영접해 의전실을 거쳐 나오게 하는 국빈대접을 했다. 대사관도 없는 나라의 극진한 대접이었다. 그들이 머무르는 2박3일 동안 숨쉴 틈 없이 한국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게 했다. 한국의 발달한 인프라 시설을 보여줬다. 공동으로 광산 개발을 하게 되면 철도와 도로 개선, 광산도시 재건, 송·배전 사업 등에 한국이 힘이 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본부장은 “볼리비아 손님들이 한국의 인프라 건설 실력에 호감을 표시하며 흡족해하더라”고 회고했다. 볼리비아 측 일행은 ILO보다 한 단계 위인 기본합의서(HOA)를 체결하고 돌아갔다. 1월 말께 계약하자는 얘기도 오갔다. 그러나 외교 의전과 절차 문제로 계약이 자꾸 연기됐다.

그러는 동안 일본이 뛰어들었다. 2월에는 볼리비아 인사들이 일본을 방문한다는 정보가 날아들었다. 이 본부장은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 측 일정이 끝나면 호텔 로비에서 일행과 스킨십을 다지며 ‘코로코로 사수작전’을 벌였다. 그렇게 해서 계약 날짜를 4월로 받아냈다. 광진공의 이한호 당시 사장과 이 본부장은 조인식에 참석하기 위해 볼리비아로 날아갔다. 하지만 지분을 50%에서 45%로 줄이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고 재협상을 논의하다 귀국해 버렸다. 6월 초에는 국내의 협상 대표자였던 이 사장이 퇴임하면서 협상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협상이 볼리비아 요구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반칙도 전략=이 본부장은 “해외 자원개발 수주전은 중간에 반칙으로 치고 들어오는 일이 흔하다. 반칙을 할 줄도, 막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원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 자원개발 사상 최고의 대박을 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의 경우 중국이 참여하기로 한 지분을 우리가 낚아채온 것이다. 원래 일본·캐나다·중국 3국이 투자하기로 했던 것을 중국의 ‘만만디’가 발동했는지 일이 늦어지고 있는 사이에 마다가스카르 정부 측과 담판을 지어 물꼬를 한국으로 돌렸다. 그는 “자원전쟁에선 정보력·돌파력·국력의 ‘3합’이 이뤄져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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