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민주화 상징 바웬사 또 공산당 정보원 활동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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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인 레흐 바웬사(65·사진) 전 폴란드 대통령이 또다시 공산정권에 협력한 비밀정보기관의 프락치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바웬사는 자유노조 창설과 폴란드 민주화운동의 공로로 198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로이터통신은 18일 바웬사가 공산당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담은 책 『바웬사와 비밀정보기관』이 23일 발매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책에는 바웬사 전 대통령이 공산당 집권 시절인 1970년대 초 ‘볼렉(Bolek)’이란 암호명으로 비밀정보기관인 군사정보국(WSI)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또 대통령 집권기(90∼95년)에는 정보원 활동상이 담긴 정부 문서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 책은 정부 문서를 관리하는 국립연구소 소속 연구원 2명이 저술했다.

바웬사는 “공산당 비밀정보기관이 나를 음해하기 위해 만든 거짓 문서를 토대로 나오는 주장”이라며 “책을 낸 연구원들을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말했다.

바웬사가 의혹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 재임 때인 92년 안토니 미치에레비슈 당시 내무장관이 공개한 정보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르면서 처음 구설에 올랐다. 바웬사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소송을 내 2000년 법원으로부터 무혐의 판결을 받아 냈다. 당시 법원은 “공산정권 시절 군사정보국이 문서를 조작해 민주화 인사를 협박하고, 포섭을 시도한 고전적 수법일 수 있다”며 바웬사의 손을 들어 줬다.

법원 판결로 끝날 줄 알았던 바웬사의 의혹은 최근 폴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과거사 청산 움직임과 맞물려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레흐 카친스키 현 대통령은 ‘공산당 조력자 색출에 관한 법’을 토대로 군사정보국의 관련 명단을 공개하고, 해당자의 공직 추방과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바웬사뿐만 아니라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전 대통령,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전 총리, 브로니슬라브 게레멕 전 외무장관 등도 군사정보국에 반체제 인사를 밀고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알려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외교관 10여 명은 이미 같은 이유로 소환조사를 받아 공직을 박탈당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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