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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정부가 세금을 왜 돌려주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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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기름값 급등 때문=정부는 이번 조치가 국민의 기름값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제 유가의 기준으로 삼는 서부 텍사스유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배럴(약 159L)당 95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세금을 돌려주겠다고 발표한 이달 초에는 138달러 선까지 치솟았답니다. 반 년도 안 돼 40% 넘게 오른 거죠.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는 기름값이 오르면 경제 곳곳에 주름이 잡힙니다. 기업도 어렵지만 교통·난방비 부담이 늘어나는 중산층·서민 역시 이에 못지않게 괴로워지죠.

◇넓고 얇은 혜택=이번에 세금을 돌려받거나 유가 보조금을 받는 사람은 전 국민의 30% 정도입니다. 하지만 직접 돈을 받지 않는 틴틴 여러분도 아빠·엄마가 받게 되면 결국 같이 혜택을 보는 셈이니 실제 수혜자는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죠. 24만원을 다 받는 사람은 한 해 총급여가 3000만원 이하인 봉급생활자와 연간 종합소득이 2000만원 이하인 자영업자입니다. 부모님이 회사에 다닌다면 봉급생활자, 장사를 한다면 자영업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틴틴 여러분에게 24만원은 큰돈이겠죠. 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엔 그리 많은 액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돈은 앞으로 1년 동안 쓰라고 주는 액수입니다. 한 달에 2만원꼴이란 얘기죠. 또 총급여 3000만~3600만원 사이의 봉급생활자와 종합소득 2000만~2400만원 사이 자영업자는 6만~18만원만 줍니다. 한 달에 5000~1만5000원꼴입니다. 이 정도면 여러분이 보기에도 아주 큰 돈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다 모아 놓으면 3조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가 됩니다. 워낙 대상자가 많기 때문이죠. 여기다 대중교통, 농어민, 소형 화물차 주인에게 주는 혜택과 에너지 개발, 절약 사업에 쓰기로 한 돈을 합치면 10조원이 훌쩍 넘어갑니다. 이렇게 많은 돈이 풀리기 시작하면 물가와 경기에도 영향을 줍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중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오르고, 물가도 0.1%포인트 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가에 미칠 영향이 이보다 클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효과·형평성 논란=돈 주겠다는데 싫다는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정부가 큰돈을 들이는 만큼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립니다. 10조원이면 큰 화력발전소를 10개 가까이 지을 수 있는 돈입니다. 쓸 만한 해외 유전 광구도 10개 정도 살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고유가 대책이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것인 만큼 이런 비판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적은 돈을 나눠 주기보다 자원 확보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혜택의 형평성에 대한 말도 나옵니다. 대표적인 게 외벌이·맞벌이 문제입니다. 연봉 4000만원을 받는 아빠와 가정주부 엄마가 있는 틴틴 친구 가족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총급여가 3600만원이 넘으면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엄마·아빠가 3000만원씩 버는 집은 두 사람이 24만원씩 총 48만원을 받습니다. 소득세를 안 내는 면세 근로자가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은 대상에서 빠진 것도 논란거리입니다. 정부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큰 서민층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편이 더 어려울 수 있는 실업·퇴직자는 혜택이 없습니다.

김선하 기자


일본도 ‘용돈성 상품권’ 줬지만 효과 없었죠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일본도 세금을 돌려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약간 다릅니다. 일본은 1999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소득층 1인당 2만 엔씩 상품권을 줬습니다. 경기가 워낙 나빠 돈이 돌지 않자 정부가 국민에게 ‘용돈’을 줘 가며 소비를 늘리려 한 것이죠. 미국은 지난달부터 전 국민의 45%에게 1000억 달러(약 100조원)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개인은 300~600달러, 결혼 가정은 600~1200달러를 줍니다. 17세 이하 자녀가 있는 집에는 한 사람당 300달러를 더 지급합니다. 미국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엉망이 된 경기의 부양이 목적입니다. 미국은 9·11테러가 있던 2001년에도 세금을 환급한 적이 있습니다.

세금을 돌려주는 게 경기를 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미국은 지난달 소매 판매가 한 달 전보다 1% 늘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증가율이 두 배나 높았습니다. 세금 환급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뜻이죠. 하지만 효과가 오래 지속될 거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길어야 두세 달이란 견해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사람들이 돌려받은 세금으로 물건을 사기보다는 저축이나 빚을 갚는 데 쓴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올해 초 블룸버그 통신과 LA 타임스 조사에서 세금을 돌려주면 소비에 지출하겠다는 응답자는 18%밖에 안 됐습니다. 지난달 미시간대 조사에서도 받은 돈을 소비하겠다는 사람은 32%에 불과했습니다.

최근 기름값 때문에 세금을 돌려주겠다고 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오스트리아가 다음 달부터 출퇴근 교통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올리기로 한 게 그중 비슷한 사례입니다. 미국은 수입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투기자본이 원유값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제재하기로 했습니다. 일본도 석유 투기 감독을 강화하고 원자력·신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인도·인도네시아·대만·말레이시아·태국 같은 아시아 국가는 거꾸로 유가 보조금을 줄였거나 앞으로 축소할 것을 검토 중입니다. 재정 부담이 너무 커지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경우든 정부가 세금을 돌려주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물가를 자극할 수 있고, 재정 부담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 세금을 돌려주기 시작하면 경제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세금을 토해내라고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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