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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창>돌로레스 클레이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불의의 사고가 불행한 여인에겐 유일한 구원이 될 수 있지.
』 평생 처음으로 자기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하녀」 돌로레스클레이본에게 「마님」 베라 도노번은 넌지시 이런 말을 던진다.
도노번은 이 말에 앞서 『세상에선 매일 남편들이 죽고 있지.지금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을거야.정부와 즐기고 돌아 오는 길에 브레이크가 고장날 수도 있어』라고 자신의 비밀을 우회적으로 털어놓는다.
그녀의 암시에 용기를 얻은 돌로레스는 개기일식으로 온세상이 캄캄해진 날 남편을 우물가로 유인해 실족사시킨다.
까다로운 주인과 묵묵하게 일만 하는 하녀로서의 관계만 유지하던 두 사람은 감쪽같은 복수극의 음모를 통해 마음이 통하고 평생의 동반자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게 된다.신분 차이를 뛰어 넘어 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은 「불행한 여인」이란 공통분모이고이 불행은 무책임한 남편이 가져다 주는 것이다.
베라에게 남편은 돈은 많지만 바람둥이고 돌로레스에게 남편이란존재는 「절망」 그 자체다.매맞는 아내인 돌로레스는 하나밖에 없는 딸 셀리나만 바라보고 돈을 모았지만 남편 조는 딸을 성추행했을 뿐만 아니라 모아둔 돈마저 가로채 탕진해 버렸다.관객들마저 돌로레스의 범죄에 큰 저항을 보이지 않으며 영화도 끝까지그녀를 옹호할 만큼 돌로레스는 남편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이 대목에서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페미니즘 영화로 비칠 수있지만 이러한 평가는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시각을 좁혀버릴 수 있다.돌로레스의 행동은 남성중심사회 전체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개인적으로 망나니인 남편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두차례 의문의 살인사건을 매개로 서로 다른 세 여성의 심리를 깊이 있게 그린 「성격창조적」인 작품이다.그런 만큼 세 여배우의 내면 연기가 중요하며 그런점에서 완벽한 캐스팅의 모범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살인혐의로 구속된 어머니와 딸 셀리나 두 모녀의 이야기가 축을 이루지만 실제로 이 영화를 살려내는 주인공은 두 나이든 여자다.
돌로레스역의 캐시 베이츠와 베라역의 주디 파피트의 연기는 자칫 평면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심리드라마에 짜임새를 주어 관객의 공감대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특히 영국 중견배우 주디 파피트는 차갑고 까다로운 대저택의 여주인역을 빈틈없이 ,또 당당하게 해낸다.
매키 형사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멋진 대령이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변신연기」를 보여준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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