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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별을 보고 점을 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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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에는 지금 블랙홀화(化)에 비견할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블랙홀이란 자체의 너무 커진 중력을 이기지 못해 붕괴한별(天體)이다.북한을 붕괴시키고 있는 자체 중력이란 다름아닌 공산주의와 (일제 식민지 경험 때문에 파생한)민 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극단화(極端化)된 편집병(偏執病)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한줄기 청량한 비평으로선 짭짤한 효험이 있지만 그 자체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될 수 없다.민족은 생물학적 유전자에 버금간다고나 할,나서 살면 갖게 되는 자연스런 삶의 양식(樣式),즉 문화적 유전이 지 거기에다앞날을 묶어두자고 할 적극적 구호(口號)감은 아니다.그래서 참으로 자기 민족의 문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문화적 열등감에 젖지도 않지만 민족주의를 구호로 삼는 자가 될 턱도 없을 것이다. 지난달 하순 런던에 있는 앨버트 홀에서는 당대의 블랙홀 상표(商標)주인공 스티븐 호킹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시간의 역사』라는 저서와 그가 앓고 있는 루게릭병,그래서 음성 신시사이저를 통해서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이 물리학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아이작 뉴턴 석좌(碩座)를 잇고있다. 『시간의 역사』에서 그가 주장한 중요한 요점의 하나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예정론(豫定論)이다.충분한 수의 방정식을세울 수만 있다면 천체,미립자,인간,어느 것 없이 미래의 운명을 낱낱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우주란 것은 본질적으 로 예측가능한 데카르트적 기계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번 강연에서 그는 이런 예측가능성이 블랙홀 주변에서는 소멸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이른바 「예정론적 카오스(deterministic chaos)說」이다.블랙홀 주변 「진공(眞空)」에서는 전자와 쿼크라는 기초 소립자(fu ndamental particles)의 짝들이 생겨나면서 「양극화(兩極化)」현상이 벌어진다.블랙홀에서는 정보가 사라지고 엔트로피(무질서)가 증가한다는 것이 호킹의 설명이다.이 엔트로피는 우주의 다른 곳으로부터 블랙홀로 옮아온다는 가 설을 그는 세운다.
자연과학 용어는 자체로서는 엄밀하고 딱딱할 뿐이지만 사회현상에 끌어다 붙이면 신비감을 준다.지난 여름 북한을 휩쓸고 지나간 홍수로 인한 대흉(大凶)으로 말미암아 지금 북한이 당면해 있는 대혼란도 북한정권 영향력의 바깥에 있는 기상 (氣象)으로부터 공급된 엄청난 분량의 엔트로피라고 대입해 보니 이런 신비감은 한층 더 새삼스럽다.북한에 관해서는 현상도 알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더욱 난감하다는 사실 때문에 빠져있는 답답함에 대해서도 블랙홀에서는 정보가 사 라진다는 호킹의 가설이한가닥 위안을 준다.모르게 돼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별도리없는 일 아닌가.
「진공」이라는 자연과학적 용어도 지금 북한 사회에 생기고 있는 깊고 광범위한 사회적 말기 현상에 대한 적절한 비유일 것같다.김정일(金正日)이 그의 아버지 자리에 덥석 올라가지 못하고있는 것 자체도 진공현상의 한 부분적 모습이다.
진공을 견디려면 강력한 재질의 차단벽이 필요하다.그것이 북한에서는 이데올로기와 군대다.남한이 보내는 구호쌀도 일단 군대를위해 쓰고 그 군대는 휴전선과 사회주의 배신자를 차단하는데 배치될 것이다.
이런 속에서 「양극화」된 새로운 기초 소립자들이 생성되어 나온다.분열세력의 필연적 등장이다.25일 북한의 노동신문에 실은장문의 담화에서 김정일이 『배신자들이 개혁을 수행하고 민주주의와 경제적 복지사회를 건설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 하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사상을 부정하고 있다』는 말로 경제적 개혁주의자들과 사상적 수정주의자들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블랙홀의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영상(影像)이다.
남한은 북한의 짝별(binary star)이다.짝별이란 공통의 질량 중심 주위를 공전(公轉)하는 한 쌍의 별이다.블랙홀화하는 북한이란 자기의 짝별을 보며 남한은 자신의 앞날을 점치려할지 모른다.그런데 블랙홀은 어마어마한 인력으 로 그 짝별의 물질을 흡인하여 채간다.사실 블랙홀은 너무나 작아진 것이기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하다.그래서 천문학은 블랙홀대신에 그 짝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異常)현상을 보아 도리어 블랙홀의 존재를 알아내려고 한다.그러므로 남한은 북한을 관측하려고 할 것이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이상을 관측하는 것이 옳은 방도일 것이다.남한 자신 하나의 별이다.별을 보고 점을 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보고 점을 치는 셈이 되어 있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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