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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보수의 중도화’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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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는 ‘변화된 대중’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한국의 정치세력들과 사회세력들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민주개혁의 진전 과정에서 제도권 내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반독재 중도개혁 정당이나 민주개혁을 아래로부터 선도한 시민운동 등에도 촛불시위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물론 촛불시위가 가장 강력한 위기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 정치세력일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안정적인 신보수체제를 열 것으로 기대되었던 이명박 정부는 이제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국정운영 기조의 전환을 단행해야 하는 지점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과 대중을 보는 인식프레임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적 입장에 서 있는 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전환은 ‘보수의 중도화’로 요약될 수 있다.

사실 대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정책을 역전시키는 보다 ‘우경화된’ 보수적인 정책과 친기업적인 성장제고 정책을 취해야 하는 것으로 시대정신을 읽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촛불시위를 계기로 이러한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참여정부=좌파사회주의 정부’라고 하는 보수 내부의 상식화된 규정이 ‘과잉 규정’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프레임을 집권 후에도 유지하게 되면 많은 충돌이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참여정부를 좌파정부라고 하고 종합부동산세 같은 정책들을 좌파사회주의 정부라고 비판하는 것은 거리에서 발설하는 선전선동의 언어로서는-동의하지 않지만-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을 객관적인 분석개념으로 사용하게 되면 연쇄적인 왜곡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즉 그 과잉 규정에 따르면 참여정부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는 사태를 정상화하기 위해 훨씬 ‘오른쪽으로 선회하거나’ 무조건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향하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대중들의 평균적인 요구나 기대와의 괴리를 더욱 확대하게 된다. 이런 왜곡된 연쇄관계가 대중들의 저항으로 표출된 것이 촛불시위이고 향후 이러한 사태의 잠재적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된다. 나의 사고에 따르면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남북 간의 ‘경제협력프로젝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기조와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둘째,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를 선택했던 대중들의 ‘진보적’ 기대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의 승리는 분명 ‘진보’ 정권에 신물 난 보수적 대중들의 지지에 힘입기도 했지만, 참여정부와 같은 중도정부의 정책조차도 ‘성에 안 차는’ 진보적 기대를 갖는 대중들의 지지에 힘입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자들은 ‘747’ 공약이나 고성장, 탈규제적 정책 등 신정부가 내건 공약들을 ‘수단’으로 해서 양극화 해소와 불평등 축소, 사교육 없는 세상, 좋은 일자리 창출, 실업 축소, 고용안정, 좋은 먹거리 향유 등 다양한 진보적 요구들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구나 보수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해온 지난 정부하에서, 대중들의 기대와 요구가 상향 조정되었다. 이런 모순적인 대중을 이명박 정부는 대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에 담긴 복합적인 요구들을 직시하면서 보수의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진보적 요구들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보수의 중도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보수 내부에 중도화된 보수와 극우적 보수의 분화도 확대될 것이다. 때로 긴장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의 중도화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위기극복 혹은 향후의 위기 우회(迂廻)를 위한 중요한 인식론적 전환지점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