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가장 자살에 "가슴 아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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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가장의 슬픈 죽음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어른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비록 늦었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한 소녀가장 鄭모(15)양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된 뒤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모여들고 있다.

숨진 鄭양의 한광중 선배로 올해 한광여고에 수석입학한 백수연(16)양은 이날 학교 장학금으로 받은 150만원 전액을 선뜻 내놓았다. 부모가 모두 초등학교 교사인 수연양은 "평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하신 부모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아버지 백인영(47.홍원초등교)씨도 "꼭 필요한 학생에게 쓰이는 것이 장학금의 참된 의미"라며 "좋은 일에 쓰고 싶었는데 마침 가슴 저미는 사연을 전해듣고 가족회의를 열어 딸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딸이 鄭양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 임은호(40.수퍼마켓 운영)씨는 "울음을 터뜨리며 친구의 슬픈 소식을 전하는 딸을 보면서 힘들게 살아온 어린시절이 떠올랐다"며 다른 학부모 3명과 함께 320만원을 모아 학교 측에 전했다.

또 이름을 밝히지 않은 40대 주부는 "鄭양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침에 신문을 읽고 온 가족이 가슴아파했다"며 금일봉을 전달했다.

기업체의 온정도 이어져 서울의 제조업체인 ㈜인광기업 직원 80여명이 성금 100만원을 모았고, 평택시 제일자동차 임직원도 한마음으로 모은 94만원을 보내왔다. 광주시 광산구 동곡농협(조합장 요상선) 직원 24명은 하루 동안 鄭양 가족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평택대(총장 조기흥) 총무과와 소녀가장후원회도 남은 가족을 위해 써달라며 각각 100만원을 보탰다.

이 외에도 익명을 요구한 독자 10여명이 중앙일보로 성금 전달 의사를 전해왔다. 서울의 한 교회 관계자는 "鄭양 가족에게 월 10만원씩을 후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한광중 장하영(57)교장은 "거동이 불편한 鄭양 어머니를 대신해 학교 공개계좌를 통해 성금을 접수해 가족들에게 전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접수는 농협계좌 171191-56-047865, 예금주 송금란. 학교 전화 031-651-3130.

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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