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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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그러나 그 뿌연 안개는 집요하게 떨어지지 않았다.뿌연 안개를뚫고 저 멀리 깨알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굴절돼 돌아왔다.
갑자기 채영이 가벼워지자 상운이 빙글거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채영,옛정을 생각해서 내 계획을 설명해주지.궁금증을 품고 죽으면 아무래도 한이 남을 테니까…내게 떠오른 계획은 이 놈이당신을 가장 잔인하게 찢어 죽이고 깊은 죄책감에서 과거와 같은메시아 망상으로 비약한 후 스스로 한적한 섬의 요양원을 찾아가감금당하게 하는 거였어.나는 처음엔 이 놈의 마음을 의심으로 가득 차게 한 후 그 분노를 순간에 터뜨려 깊은 죄책감에 빠뜨릴까 했었는데 이 놈이 워낙 바람둥이고 집착이 없는 놈이라 그계획을 중간에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어.그래서 곰곰이 궁리하던차에 이 놈이 그 길을 가르쳐 준거야.바로 정신병을 인위적으로만드는 거지.이 놈은 곧 당신을 이 절벽에서 떨어뜨려 갈가리 찢겨 죽게 만든 다음 곧 한적한 섬의 요양원으로 끌려 갈거야.
그리고 좁게 폐쇄된 공간에서 감각 박탈과 수면 박탈을 당하고 정신병을 초래하는 약물을 복용해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이 발달하게될거야.UFO와 교신하고 사람을 뱀으로 보는 등으로 말이야.』『야,이 자식아!우리나라가 그렇게 허술한 줄 아느냐!정신과 의사를 함부로 요양원에 가둘 수 있는 줄 알아!』 민우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사전 조사가 다 돼 있어.너는 좁은 창틀만 있는 사방의 어둠 속에 쇠사슬로 묶인 채 죽을 때까지 갇히게 될 거야.나도 그렇게 하면 말썽이 일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이 나라는 돈만 주면 알아서 확실하게 일들을 처리해 주는 곳이 많더구만.이 나라에 정신병자들의 인권이 어디 있어.일반 사람들의 인권도 무시되기 다반사인데…그리고 김민우 선생!당신이내 계획에 협조한 데 대한 대가로 마지막으로 당신의 순진한 무지를 깨우쳐 줄테니 두고두고 숙지해 봐.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야.남북한에 지금 이 바위들을 허물어뜨릴만한 고성능 폭탄 몇개만 폭발시키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주 쉽지.필요하다면 핵폭탄도 한 두개 터뜨리고 말이야.한반도에서 다시 전 쟁이 일어나고 피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게 되면 내 권태도 좀 가라앉을 거야.권태는 그 정도는 돼야달래지는 거 아니겠어.어쩌다 내가 정민수나 너를 만나게 돼 이계획이 다소 지연되긴 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거칠 것이 없어.자,더 이상 할 말은 없겠지.있다 해도 말하지마.더 이상 그 순진한 잠꼬대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자,마지막으로 나에게 보여주시지.너희들의 감동적인 라스트를….』 갑자기 팔이 떨어질 것같은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상운이 채영의 플로팅 가스를 꺼버린것이다.
글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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