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 언급하면 자동차도 흔들릴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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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02면

한나라당 쇠고기 대책 방미단장인 황진하 의원은 14일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자꾸 언급하면 자동차와 쌀 문제까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9∼13일 미국을 다녀온 황 의원은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부분적으로 보면 양쪽이 다 불만이 있는 것 아니냐. 한국이 쇠고기에 불만을 말한다면 미국에선 자동차가 불만이 많은데 그러면 합의가 어떻게 되느냐’며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우려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금지 등에 대해 미국 측 인사들이 협조 의사를 밝히다가도 ‘재협상’ 용어를 꺼내면 상당히 난색을 표했다”면서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쓰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웬디 커틀러는 지난해 4월 체결된 한·미 FTA 협상 미 측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커틀러 USTR 부대표, 한나라 방미단에 … 김종훈-슈워브 14일 협상도 난항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2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미국과 장관급 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끝까지 ‘재협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재협상과 같은 효과를 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추가 협상’이란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대한 악영향 우려와 함께 이 같은 미 측의 기류를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소만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미국 정부로부터 문서상 보증을 받겠다’는 게 목표인 ‘추가 협상’ 자체의 전망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14일(한국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김종훈 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USTR 대표의 첫 협상도 2시간30분 동안 신경전만 벌인 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김 본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실효성 있는 회담이 되게 하겠다. 내일 다시 (미국 측과) 만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숀 스파이서 USTR 대변인은 “이 협상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 협상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두어 차례 만남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양측 민간 수출입업자가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서 자율 규제 방식으로 수출입을 제한하고, 이를 정부가 강제하는 수출증명(EV·Export Verification) 프로그램을 운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게 받아들여진다면 재협상과 다름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EV 프로그램은 미국 정부가 나라별로 맺은 수입위생조건에 따라 쇠고기 수출작업장에 수출 조건을 지시하고 이를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수출검역 증명서에는 검역관의 확인 서명까지 들어간다.

하지만 미국은 EV 프로그램 같은 정부의 문서 보장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배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EV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상 4월 합의의 번복이고, 현재 진행 중인 일본·대만·중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미 우리 정부는 김 본부장의 방미에 앞서 김병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박덕배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을 통해 미 측에 이 안을 제시했으나 미 측은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김 본부장과 슈워브 대표 간 ‘추가 협상’이 소득이 없을 경우 국내 시위대의 타깃이 미국으로 옮겨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추가 협상은 한·미 간 사전에 깊이 조율되지 못한 채 시작됐다”면서 “성과가 없을 경우 반미시위로 증폭되는 위험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한·미 양국은 이번 주로 잠정 잡혀 있던 한·미 외교차관급 전략대회도 무기한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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