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농담도 잘하시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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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12면

링컨의 정적(政敵)이 링컨을 겨냥해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대해 링컨은 “만일 제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받아넘겼다. 그의 정적이 무색해졌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링컨 미국 대통령 얼굴이 당시에는 흉물스럽게 보였고 본인도 이를 알았던 모양이다.

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대통령의 위트』(밥 돌 지음, 아테네)에 실린 일화다. 최근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미국 관련 책을 세 권 잇따라 읽었는데 그중 하나다. 자칫 정부에 반대하면 좌파, 미국을 꼬집으면 반미, 둘 다를 겸하면 ‘사탄의 무리’로 치부되는 세상인지라 신중하게 고르느라 나머지 두 권은 평년작이었다.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리처드 생크먼 지음, 미래M&B)과 『검증, 미국사 500년의 이야기』(사루야 가나메 지음, 행담출판)는 꽤 흥미롭기도 했고 밑줄을 치고 싶은 대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美國)이 아름답기만 한 나라가 아니며, 곧잘 자유나 정의를 외치지만 실은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정도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위트』는 여러모로 눈길을 끌었다. 우선 지은이가 1996년 클린턴과 대권 다툼을 벌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이다. 그가 조지 워싱턴에서 조지 부시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의 유머를 모아 순위별로 정리했는데 이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신랄하고, 정곡을 찌르는 명구들이 수두룩하다. 읽기에 따라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주는 교훈이 만만치 않다.

링컨의 전임자였던 제임스 뷰캐넌은 사후에 국민들이 그의 동상 건립 기금을 내지 않으려 했을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의 업무수행 수준을 요약해 달라는 청을 받은 존 셔먼 상원의원은 “헌법은 모든 불의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신적 공백은 해당사항이 아닌데요” 했다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제22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본인도 문제였지만 참모들은 더해 사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한 평자가 이를 두고 “대통령은 정치인이 찾아오면 상처를 입혔다. 그럼 비서 서버가 와서 소금에 절인 생선 같이 굴어 그의 상처를 더 아프게 했다”고 정리했다니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할까.

그래도 본령은 웃음이다. 최다선을 기록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는 역대 최고의 퍼스트 레이디로 꼽힌다. 하루는 교도소를 방문하러 아침 일찍 떠났는데 뒤늦게 일어난 루스벨트 대통령이 행방을 묻자 비서가 “교도소에 계십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루스벨트는 “놀랄 일은 아니군요. 그런데 혐의가 뭐죠?”라고 반문했으니 그의 유머 수준은 정치력 못지않았던 셈이다.

이런 대통령을 만났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코미디의 소재로 제공하는 대통령 말고.


중앙일보 출판팀장을 거친 ‘책벌레’ 김성희 고려대 언론학 초빙교수가 격주에 한 번 책읽기의 길라잡이로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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